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Jan 27. 2024

나는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사람 사는 곳엔 쓰레기가 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잡히는 게 있다. 자그마한 종이가 돌돌 말려 있는 것은 카드를 결제하고 받은 영수증이다. 평소 영수증을 받으면 늘 망설이는 동작은 어디다 버릴까였다. 할 수 없이 손에 들고 다니며 꾸기적거리다 결국엔 주머니에 넣고 만다. 오래전엔 시내 곳곳에 쓰레기통과 재떨이가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곳이지만 쓰레기가 넘쳐 주변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말았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쓰레기통이 가끔은 아쉬워도 변하는 사회 모습에 동의하며 살아간다. 


전원의 삶이 그리워 몇 년 전에 시골에 자리를 잡았다. 한적한 골짜기이기에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은 하루하루가 편안하다. 맑은 공기를 찾아 오르는 뒷동산은 언제나 싱그럽다. 녹음이 있고 바람이 있으며 아름다운 풍광이 있다. 야트막한 산엘 오르면 멀리는 주택들과 널따란 들판이 언제나 정겹다. 어렵게 올라가는 길이 있어 사람도 오가고 작은 차량도 오갈 수 있다. 


조금 올라가자 나무밑에 난데없이 하얀 물건들이 보인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폐냉장고에 각종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구석진 골짜기까지 어떻게 쓰레기를 싣고 와서 버렸을까? 오갈 수 있는 길도 좁고 동네를 통과해야 하니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신기할 정도의 많은 양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다. 


동네에도 쓰레기는 가득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운동을 하러 시골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이다.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늦가을의 풍경이다. 간신히 골목길을 벗어나면 언덕아래에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보인다. 허름하지만 동네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동네에서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올까? 나는 얼마나 만들어 내고 있을까?


시골에 자리를 잡으면서 집 둘레엔 잔디밭이 있다. 거의 100여 평이되어 자주 깎아야 하는데 깎은 잔디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텃밭에서 나오는 고춧대를 비롯해 가지줄기, 나무를 전지한 것은 어떻게 버려야 할까?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내에게 물어가며 분리해서 버리지만 늘 어려운 분리수거다.

택배를 이용하는 경우엔 분리수거가 복잡한다. 스티로폼이 있고 테이프가 감겨 있다.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뽁뽁이가 가득 들어 있다. 냉동을 위해 넣은 냉동용품이 있고, 주소를 적은 용지가  단단히도 붙여 있다. 한참을 뜯으려 해도 어려운 일이다.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해 보지만 이것이 일일이 분리해서 버려야 함은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다. 서서히 가을이 깊어지면서 김장철이 돌아오고 있다. 


도심에서의 김장 쓰레기 분리 및 처리는 너무 어렵다. 배추를 정리하고 남은 배춧잎이 있고, 다양한 쓰레기는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전문가의 눈엔 쉽게 보이지만 보통시민들이 분리하기란 어렵기만 하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김장을 많이 하지 않고, 절임배추를 이용하기에 쓰레기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온 국민이 떠들썩한 김장철의 쓰레기는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해결해야 할 절실한 현재의 문제이고 미래의 고민거리다.


쓰레기 분리수거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환경미화원들이다. 찬바람을 이겨내며 해내야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다. 온갖 냄새가 풍기는 쓰레기도 있고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쓰레기도 있다. 냄새나는 물이 흐르는 음식쓰레기가 있는가 하면 온갖 쓰레기가 혼합되어 있는 것도 있다. 하루만 지나쳐도 동네가 난리가 나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을 해내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침 운동을 나서는 길이다.


세상에 배울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던가? 어느 무인 세차장에 있는 문구로 곳곳의 쓰레기를 만나면서 생각나는 글이다. 나는 과연 쓰레기를 잘 버리고 있을까? 외진 골목을 지나가자 음악과 함께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음이 나온다. 구석에는 여지없이 쓰레기가 놓여있는 모습, 이젠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자연의 망가짐은 결국 대가가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어렵지만 쓰레기 분리수거 해야 하는 이유다. 아침부터 고군분투하는 환경미화원들의 노고를 무시할 수 없다. 새벽부터 쓰레기를 줍는 어르신들의 발길이 죄송스럽기도 하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며 미래세대들의 안전한 삶의 길이기도 하다.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일이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다. 자그마한 골짜기에 살면서 내가 만드는 쓰레기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을까? 어설픈 반성을 하는 나는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월을 그리며 만난 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