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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31. 2024

눈이 온 골짜기는 춥지만 아름답다.

(눈 내린 1월 중순 골짜기 풍경, 잔디밭의 풍경)

눈이 내린 골짜기는 썰렁하다. 조잘대던 이웃집 닭도 입을 다물었고, 종일 옹알대던 참새떼도 종적을 감추었다. 이 추운 날씨에 어디에 몸을 숨겼을까? 앞산에 어정거리던 고라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골짜기다. 밤새껏 내린 눈이 잔디밭을 가득 메웠고 온 산이 하얀 옷을 입었다. 여기가 골짜기임을 넉넉하게 알려주는데, 겨울이 왔음은 동네 굴뚝에서 먼저 알려준다. 오래전 초가지붕 위로 솟아오르던 연기가 골짜기 곳곳에서 추위를 몰아내고 있다. 산 중턱에 앉은 작은 집에서 나오는 연기가 으뜸이다. 긴 산을 따라 흐르는 모습이 평화롭다.


서민들의 삶을 돌봐준다는 잘난 어르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름값이 오르고 장작값이 비싸니 언제나 추워도 참아가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다. 추위보다 몇 년 전보다 두 배나 오른 기름값을 먼저 걱정하게 하고, 전기세를 생각하게 한다. 몇 만 원 하던 전기세는 십만 원에 육박하고, 도대체 마음 놓고 구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던가? 가끔 찾아가는 시골장엘 들렀다. 언제나 돈의 단위가 2천 원 또는 3천 원이었다. 나물 한 움큼의 값이 그러하니 언제나 만만한 값이었다. 이젠, 어림도 없는 세상이다. 

적어도 5천 원이요 대부분은 만원 단위로 포장되었다. 만원이어도 감사하고 더러는 2만 원이 최저단위로 되어있으니 서민들의 삶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많은 걱정을 덮어주려는지 함박눈이 가득 내린 골짜기는 아늑하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도랑인지 알 수 없는 눈세상이다. 잔디밭엔 하얀 눈이 쌓였고, 어느 산식구가 찾아왔는지 온통 발자국으로 가득이다. 먼산에 하양으로 덮였으니 각박한 삶보단 아름다움이 먼저다. 커다란 나무에도 눈이 가득이고, 지붕에도 눈이 수북하다. 


어디선가 장작 패는 소리가 한창이다. 겨우내 불을 지피다 보니 장작이 더 필요한가 보다. 기름값보다 싼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르신의 노고가 대단하다. 마당 가득 패 놓았던 장작이 소진되도록 추위가 혹독한 골짜기의 겨울이다. 앞산에도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상고대가 가득이다. 저렇게 추워도 나무는 견딜 수 있나 보다. 어떻게 겨울을 참아내고 초록 잎을 밀어낼까?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끄덕이는 아침, 자그마한 도랑에 물소리가 여전하다. 벌써 봄이 오려나 하얀 눈 속에서도 흐르는 물소리가 다정스럽다. 눈을 쓸어내야 하는 길가엔 아직도 푸름이다. 

일 년 내 집을 지켜주던 꽃잔디의 모습이다. 아직도 푸름을 가득 안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이 겨울을 버티었단 말인가? 껑충한 영산홍도 조금은 푸름이다. 작은 텃밭에 뿌려 놓은 시금치는 푸름으로 가득하다. 지난가을 아내의 부지런함이다. 봄이면 싱그러운 반찬을 내어 주리라. 골짜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이 눈물겹다. 하양으로 가득한 골짜기에 봄이 이젠 오려나보다. 


싸늘하지만 따스함이 조금 묻어있는 산바람에 이웃닭이 한마디 거든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서히 봄을 준비해야겠다. 텃밭엔 퇴비를 줘야 하고, 작은 화단을 돌봐야 하며 뒤 언덕엔 맥문동을 심어야 한다. 300여 포기는 능히 심을 수 있는 언덕이다. 흘러내리는 토사도 막아보고 아름다운 꽃도 보고 싶어서다. 음지에서도 씩씩하게 자라는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는 날이면 골짜기는 한결 풍성해질 것이다. 푸름이 오고 꽃이 피며, 많은 사람들이 구경삼아 찾아오리라. 서서히 오고 있는 봄, 가슴에는 이미 찾아온 골짜기의 봄이다. 

골짜기를 오가는 골짜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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