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Jan 11. 2024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딸네집을 나서다)

이른 새벽에 문을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 오랜만에 찾은 딸네집, 2박을 했으니 삶에 거의 없는 이틀의 느긋한 여행이다. 곰살맞은 사위가 여행 길잡이를 해주고, 어린 손녀가 하루만 더 있어 달라는 애원 때문이었다. 언제나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불러 주는 소중한 딸이다. 아름다운 도시 부산에 살고 있어 해산물이 가득하고,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겨울 방어철이 되어 어김없이 불러 주니 일상을 뒤로 하고 찾아 나섰다.


풍성한 방어에 소주 한잔을 나누고, 새해 아침엔 근접하기도 힘든 해맞이 장소를 찾아 나섰다. 간절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솟는다는 곳이다. 산뜻한 햇살보다는 자그마한 햇살이 더 소중하다. 자잘한 윤슬이  바닷가를 가득 메우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윤슬에 홀려 넋을 놓았고, 시원한 바다내음에 정신 줄을 잃었다.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홀가분함을 맛보며 하루를 보내고 다시, 광안리로 동백섬으로 나들이를 했다.


계절마다 흔쾌히 불러주는 딸이 있고, 사위와 손녀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언제나 생각처럼, 혹시 아이들의 삶에 부담이 되진 않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머릿속에 드러낸 생각이다. 그들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을진대 아비라고 죽치고 앉아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얼른 내 삶으로 돌아와야 아이들도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닌가? 언제나처럼 이튿날, 새벽에 슬며시 나와야 마음이 편하다.


오래전,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아들의 삶에 부담이 될까 얼른 자리를 털고 나가신다. 할 일이 없음을 알고 있지만 급하게 할 일이 있다는 핑계다. 서둘러 나가는 어머님의 뒷모습, 헐렁한 머리칼에 가늘어진 뒷모습에 늘 가슴이 아려왔던 기억이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이면 어떻게 할까? 늘, 신경을 쓰이게 하는 일이다. 얼른 문을 닫고 나와야 마음이 편한데 그예 들키고 말았다.


드문드문 남은 머리칼이 그렇고, 홀쭉해진 어깨가 그렇다. 혹시나 아이들이 서글퍼하면 어떻게 할까? 언제나 들키고 싶지 않은 아비의 마음이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니 부모의 삶이 오래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늘 마음을 다 잡으며 살아가고 싶다. 아이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면 아침부터 운동을 해야 한다.


체육관에도 가고 산에도 가야 하며, 자전거도 열심히 타야 한다. 나름대로의 취미생활로 그들이 돌아볼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몸은 따라 주지 않는다. 10여 km를 뛸 수 있었던 몸은 5km로 만족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희의 몸뚱이로 이만하면 족하다는 생각이지만 허름한 아비로 살 수는 없음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야 한다. 힘들지만 밖으로 나서 활력있는 삶이어야 한다.


서둘러 문을 닫으라하자, 아프지 말라는 딸아이의 말에 가슴이 저려온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마음이 복잡하고도 새로운 계절이다. 오늘도 나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이지만, 마음같이 따라주지 않음에 오늘도 마음만 바쁘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계절, 모두가 건강한 한 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간절한 아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