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어머니, 처서입니다.
따가운 여름 햇살 물러나고
선선한 바람 오라 하며
가을이 드리워지는 처서가
자그마한 귀뚜라미 소리를 끌어안고
우리 곁을 찾았습니다.
고구마 덩굴이 긴 밭고랑을 덮어
헐렁하던 텃밭 가득해지고
텃논 제방에 동부덩굴 실해져
녹음을 얹은 긴 파도 일렁이는
가을 문턱의 처서가 왔습니다.
어머니, 처서가 찾아오면
풀 섶에 풀벌레가 찾아들고
길가 흩어져 자란 코스모스
진 빨강으로 입술을 발라
하늘 속 빨강 고추잠자리와 축제를 하는
오래전 당신과 바라보던 처서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처서가 뒤뜰에 찾아들면
아이 주먹만큼 자란 풋감이
넓은 잎을 제치고 얼굴 내밀어
따가운 햇살에 더욱 빛나며
가을을 알려주던 어머님의 처서가
시골집에도 찾아왔습니다.
채마밭가 옥수수 실하게 영글면
허연 수건 질끈 두른 어머님
허름한 소쿠리 옆에 끼고
거무스름한 옥수수 분지르던 처서가
여러 여름을 뛰어넘은 듯이
선뜻 가슴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오늘이 처서입니다.
따가운 햇살 수그러들고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도 몰래 긴 옷깃 여미며
하늘 속에 어머님을 그려보고 싶은
오래전 당신과 함께 하던
그 처서가 가슴으로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