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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08. 2024

지는 가을 아쉬워 가을을 들여놓았다.

(지는 가을 아쉬워, 대청호의 가을)

야멸차게도 덥던 여름이 가는가 했는데 가을도 뒷걸음질이다. 벌써라는 말이 나오는 계절, 길가엔 낙엽 뒹구는 모습이 썰렁하다. 김장배추 선전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고, 문을 닫았던 호떡아주머니가 가판대를 열고 추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 겨울을 맞이해야겠다, 지는 가을이 아쉽기도 한 계절이다. 오늘은 가을을 집안으로 한껏 들여놓기로 했다. 거실에도 가을을 놓고, 뜨락에도 가을을 앉혀 놓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은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짓는 일요일이다.


골짜기로 들어오는 골짜기엔 산국에 가득이다. 노랗게 피어난 산국이 늦가을임을 알려준다. 곳곳에 구절초가 하양을 자랑하고 있고, 무더위가 짓밟은 배추밭은 처절하게 주저앉았다. 농부들의 시름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오래전 내 아버지가 생각 나서다. 얼른 들어선 뜰에도 구절초가 피었고, 대문을 지키는 칠자화는 붉은 열매를 달고 있다. 지난해에 심어 놓은 산국이 노랑을 달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햇살이 찾아주지 않으니 오늘도 그만이다. 며칠 전 국화를 들여놓았다.

거실에도 가을이

국화 기르는 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실패를 했고, 가을이면 몇 개의 화분을 들여놓고 가을을 즐긴다. 지나는 길에 화원에서 밝은 노랑과 붉음을 자랑하는 국화를 옮겨 놓았다. 가끔 찾아오는 벌이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밖이 온통 가을인데 거실도 그냥 둘 순 없어 잠시라도 부여잡고 싶었다. 여름 내내 거실을 지키고 있던 수채화 한점 '녹음이 내린 호수'를 내리고, '가을이 내린 골짜기'를 내 걸었다. 손녀가 봐주고 아내가 거들어주며 내건 수채화 한 점이 집안분위기를 가을로 바꾸어 놓는다. 이만하면 어떠랴 하지만, 그래도 허전했다. 가을을 즐기는 골짜기의 삶이 생각 나서다.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 곶감용 감을 팔고 있다. 지난해엔 감이 흉년이라 곶감용 감을 구하지 못했는데 순식간에 동이 나서다. 얼른 상점에 들러 감 100개를 구입해 아내와 깎았다. 곶감용 걸이에 감을 꽂아 현관 밖에 걸었다. 뜰에는 구절초와 산국이 피었고, 데크에는 가을꽃 국화가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 붉은 감이 곶감으로 익어가는 모습으로 부자가 되었다. 거실에는 가을을 품은 골짜기 풍경이 환하게 웃는다. 엊그제 찾은 손녀가 곶감 만드는 법을 궁금해하고, 사위도 곶감을 만들어 보고 싶은 모양이다. 

골짜기에도 가을이 가득

얼른 과일 상점에 들러 곶감용 감을 구입했다. 감 50개를 다시 구입하여 손녀와 함께 감을 깎아 곶감걸이에 걸어 추녀밑을 장식했다. 손녀는 모든 것이 신기해 참견을 한다. 어제 100개에 오늘 50개이니 총 150개를 달아 놓았다. 붉음을 자랑하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에 흐뭇하다. 가을이 뜰에도 그리고 집안에도 가득 들어앉았다. 시골에서 이만한 호사도 누리지 못하면 어떡하겠나? 얼마 되지 않는 노력으로 가을이 품은 골짜기의 주택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지는 가을이 아쉬워 가을을 그리려 바쁘게 하루를 보낸 휴일, 이만하면 골짜기의 삶에 넉넉함이 가득하지 않은가! 지는 가을이 아쉬워 가을을 가득 주저앉힌 전원살이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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