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화단을 보면서)
오래전, 시골에 집을 마련하면서 손녀에게 작은 화단을 내주었다. 자그마한 구석이지만 외가에 올 때마다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추억을 주고 싶어서다. 가끔 찾아오는 시골이지만 언제나 즐거워하는 손녀다. 늘 조심스러워야 하는 아파트와는 달리 한달음에 뛸 수 있는 공간, 현관문을 들어서며 달리기를 한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손녀는 한 없이 맑게 웃곤 한다.
여기에 자기 화단이 있으니 할머니와 어울려 꽃을 심고 물을 준다. 대부분은 할머니 몫이지만, 가끔 꽃을 사들고 오는 모습이 늘 즐거워 보였다. 꽃을 심고 물을 주던 세월은 성큼 흘렀고, 손녀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이것저것 할 공부가 많은지 6학년이 되어 외가 출입도 뜸해졌다.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공부 때문이다. 신나게 뛰고 놀면서 꿈을 키워야 하는 어린 시절이다. 하지만 세월은 성큼 변했고 쉬이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해야 하는 공부, 여기에 학원이라는 올가미가 앞에 놓여 있다. 시골엘 자주 오지 못하는 이유다.
꽃을 사들고 찾아오던 외갓집, 이젠 할머니가 화단을 가꿔야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녀를 위해 오늘도 화단을 정리한다. 풀을 뽑고 예쁜 꽃들을 돌본다. 할아버지는 열심히 물을 주며 꽃이 피기를 고대한다. 가끔의 생각은 손녀가 오는 날에 꽃이 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쁜 꽃이 피어 있는 화단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몇 해전에 손녀가 심어 놓은 패랭이가 붉게 꽃을 피웠다. 노란 수선화도 꽃을 피웠고, 분홍에 붉음이 가득한 금낭화가 꽃을 달았다. 황금달맞이꽃이 자잘하게 자리를 잡았고, 분홍을 수놓을 앵초도 준비 중이다. 손녀의 화단에 꽃은 가득한데 손녀는 오지 않는다. 학교로 그리고 학원으로 오가는 발길이 가끔은 안타깝기도 하다. 쉼이 주어질 수는 없을까?
며칠 후면 손녀가 외가엘 온다는 소식이다. 손녀의 화단에 가득 핀 꽃이 그때까지 피어 있을까? 손녀가 올 때까지 피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가 화단을 가꾸고, 할아버지가 물을 주면서 하는 생각이다. 꽃으로 가득한 화단이지만 가끔은 허전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화단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다.
어린이들은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투어를 해야 한다. 학교수업도 어려운데 영어에 수학이 기다리고 과학이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예체능이 기다리고 있으니 언제 쉬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이 왔다. 여기에 어린이날이 포함되어 있는 5월이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쉴 수 있는 세상은 올 수 없을까? 건물마다 수도 없이 들어선 학원, 아이들이 오길 고대하고 있다. 언제나의 당부, 어려서부터 공부에 찌들게 하지 말자는 부탁이다. 딸아이도 수긍하고 미술과 피아노 그리고 합기도를 위한 놀이 학원만 보낸다니 고맙기도 하다.
며칠 후면 손녀가 찾아온단다. 어서 화단을 돌봐야 하고, 정원에 꽃이 남아 있기를 고대해 본다. 할머니는 오늘도 화단을 서성인다. 아직 몽우리를 맺고 있는 분홍빛 앵초가 며칠 후에 피기 바라면 서다. 활짝 피어 있는 패랭이와 금낭화도 서서히 꽃을 달고 손녀가 오는 날까지 피어 있기를 바라면 서다.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5월, 어린이들이 신나는 뛰어놀 수 있는 계절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