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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 봄은 미리 와 있었다.

(봄맞이 준비를 하며)

by 바람마냥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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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대지가 볼록 올라왔다. 골짜기엔 아직도 잔설이 꾸물거리는데 계절은 용케도 봄을 알아낸 것이다. 

지난봄에 붉음으로 손녀 화단을 수놓았다 튤립이 고개를 든 것이다. 

어떻게 봄을 알아차렸을까? 

따사한 바람도 아직이고, 도란대는 도랑물도 봄과는 어림없는 소리였다.

야리야리한 초록으로 두터운 대지를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었다. 

방금 찾아온 햇살이 비추는 초록,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득한 초록이다. 

야, 이런 초록도 존재하는구나! 

한참을 바라보다 눈길을 돌린 골짜기엔 봄은 미리 와 있었다.


계절의 변화무쌍함을 한눈에 알려주는 징조들이 곳곳에 내려온 것이다. 

노랑이 자리 잡은 산수유는 느긋한 거만함이 넘쳐흐른다. 왜 이렇게 거만할까?

기어이 겨울을 이겨낸 노랑, 푸름의 뒷받침이 없어도 넉넉한 노랑빛이 가득해서다.

지난해, 왠지 골을 부리는 산수유가 못마땅했다. 

노랑꽃도 어림없는 색깔이었고, 느지감치 나타난 푸름도 어깃장을 놓아서다.

왜 그럴까를 고민하던 중에 생각난 것은 주인장의 칠칠치 못한 심성 때문이었다.

언제나 진한 노랑만 원했지 먹음직한 먹거리는 늘, 소홀했었다. 

앗차 하며 어림없는 인간의 소홀함을 만회하고 싶었다. 

지난가을에 넉넉한 퇴비로 산수유나무를 달랬다. 

넉넉함과 미안함을 담아 몇 년의 소홀함을 만회하고 싶어서다. 기어이 산수유나무가 보답을 한 것이다.

진한 노랑을 가득 앉고 햇살에 빛나고 있다. 

인간이 만들 수 없는 노랑에 눈이 멎었다. 

맑은 노랑 하면 손녀의 화단의 대세인 수선화를 따를 수 없다. 

몇 년 전, 고창 선운사부근의 이름 모를 식당에서 얻어 심은 수선화다. 

식당 주인의 넉넉함에 건네받은 노랑 수선화, 아직은 힘을 모으는 중이지만 대단한 노랑이었다. 

노랑물이 뚝뚝하고 떨어질 기세였던 수선화가 아직 꾸물거리고 있지만, 기대할만한 맑은 노랑이다.

자연이 주는 튤립의 초록에 붉은 꽃이 피고, 수선화와 산수유의 노랑이면 골짜기는 봄의 절정이다. 

어느 화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듯한 자연의 색깔이 골짜기에 가득한 봄이 될 것이다. 

잔잔한 붉음은 곳곳에 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영산홍의 진한 붉음이 준비를 마쳤고, 대지를 덮었던 꽃잔디의 붉음도 질 수 없다.

겨우내 대지에서 웅크리고 있던 꽃잔디는 벌써 물을 올리며 신이 나 있고, 붉은 꽃망울을 이고 있는 영산홍은 금방이라도 붉음이 터져 나올 기세다. 

봄의 골짜기에 푸름과 노랑에 붉음이 출발 총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작은 도랑물이 있어야 어울린다. 

맑은 어름장 밑으로 옹알거리던 도랑물 소리, 얇은 얼음을 걷어내 준 봄바람이다. 

어린아이가 옹알거리는 듯한 도랑물이 힘을 얻었다. 하얀 눈이 힘을 더해줬고, 봄비가 찾아 올 기세다

골짜기의 여러 식구들이 총동원될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산말랭이를 넘은 햇살이 찾아오는 날, 골짜기는 넉넉한 봄이 될 것이다.

아직은 썰렁한 듯한 골짜기지만 용케도 봄이 미리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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