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양이 가득한 골짜기, 가끔 뻐꾸기가 울어준다.

(하얀 꽃이 가득한 동네)

by 바람마냥

봄이 짙어가는 골짜기 풍경

골짜기의 삶은 자연과 함께한다. 시원한 바람이 있고, 맑은 햇살이 있으며 투명한 이슬이 신선한 아침을 안겨준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계절 따라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가끔은 지나는 새들이 아는 척하고, 산짐승들이 놀자 한다. 여기에 꽃과의 만남은 시골살이의 으뜸이 아니던가? 봄부터 산골을 채워주던 붉은 꽃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이 짙어가면서 골짜기에는 어떤 모습일까?


봄이 오면서 새들이 분주했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함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불편했는지 언제나 처마밑을 요구한다. 보증금도 월세도 없는 셋집, 처마밑은 어김없이 그들의 차지다. 검불을 물어 나르고, 배설물에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집주인이다.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전혀 무관심하다. 여기에 산까치는 어떠한가?


자그마한 틈만 있으며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곳곳에 집을 짓느라 분주한데, 여기에 방해가 되면 여지없이 공격을 한다. 낮게 나르며 사람을 위협하는 산까치, 이름만 예쁜 산까치다. 가끔은 고라니가 산말랭이를 내려오기도 하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넉넉한 골짜기 풍경이다.

IMG_3040[1].JPG

붉음의 세월이 지났다.

봄부터 피기 시작한 붉음, 꽃잔디가 있었고 영산홍이 있었다. 찡하게도 붉음을 자랑하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봄 세상임을 알려주던 꽃들이 서서히 여름꽃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조팝나무가 꽃을 피웠고, 이팝나무 그리고 찔레가 하양으로 물들였다.


자그마한 동네 입구엔 비탈밭이 있고, 몇 개의 논자락이 있다. 구부러진 논두렁이 멋을 부리는 작은 논, 모심을 물이 담겨 바람에 찰랑거린다. 맑은 햇살까지 내려와 작은 원을 그리는 물결이 선명하다. 여기에 하얀 꽃이 담겨 있는 것은 언덕에 피어오른 하얀 찔레꽃이다. 구부러진 논과 출렁이는 물 그리고 하얀 찔레꽃이 잘 어우러지는 골짜기의 풍경이다. 찔레꽃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가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의 붉은 찔레꽃은 어떻게 생겼을까를 생각도 해 본다. 하얗게 피어도 너무 하얀 꽃, 찔레꽃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다. 하양을 말하면 아카시꽃을 떠오르게 한다. 손으로 한 움큼 따서 입에 넣던 시절, 달콤한 꿀향이 입안에 가득했었다.


1960년대 헐벗은 산을 푸르게 하고자 심었던 아카시 나무가 꽃을 피운 것이다. 하양에 달콤함을 가득 안고 동네 벌을 모으고 있다. 파란 하늘에 덜렁 달린 하얀 꽃, 아카시꽃이 지나는 객을 불러 세우자 어디서 향이 날아오는지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계절이다.

IMG_0561.JPG

하양과 노랑이 골짜기를 채웠다.

찔레꽃과 아카시아가 풍성한 골짜기에 다른 하양도 지천이다. 정원엔 백당화가 피어났고 이에 질세라 불두화도 자리했다. 어찌나 성장이 빠른지 정원을 가득 메운 꽃들이다. 하양 꽃으로 화단을 내려다보던 꺽다리 때죽나무가 하양을 떨어트리자 이 자리엔 말발도리가 차지했다.


하얗게 피어도 너무 하얀 꽃, 말발도리다. 하얀 꽃이 진 뒤 열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잔잔함을 주는 말발도리가 있으면 만첩빈도리가 있다. 하양이 겹꽃으로 피며 줄기가 비었다고 만첩빈도리라 하는 꽃이다. 만첩빈도리는 하양이 겹으로 피어 다복하고, 말발도리는 맑은 하양으로 키가 작은 꽃이다. 여기에 내린 이슬이 아침햇살에 빛나는 모습, 어쩔 줄을 모르고 바르르 떤다.


하양으로 치장한 골짜기가 숙연해질 무렵, 아직도 애기똥풀은 노랑이다. 자그마한 도랑을 기준으로 피어난 노랑 애기똥풀, 여기에 여름을 빛내주는 금계국이 동참했다. 어찌나 번식력이 강한지 여름이 지나 줄기를 뽑아낸 자리를 여지없이 채워주는 금계국인데, 노랑 하면 황금낯 달맞이꽃도 무시할 수 없다. 밤이면 꽃잎이 닫히고, 아침이면 슬며시 열는 황금낯 달맞이꽃이다. 도랑을 따라 길게 피어 동네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노랑으로 수놓는 골짜기엔 기린초와 돌나물도 노랑꽃으로 웃는다. 기린처럼 목이 길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기린초이고, 봄부터 싱그러운 나물을 주던 돌나물이다. 봄부터 싹을 틔우고 몸을 다스린 노랑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것이다. 화려한 붉음의 초봄이 지나 하양으로 초여름을 열더니, 여름이 무르익으면서 다시 노랑의 세상이 된 골짜기풍경이다.


먼산에 뻐꾸기도 가끔 울어준다. 초가지붕이 어울리는 뻐꾸기 소리에 고라니는 가끔 짝을 지어 찾아온다. 산새들이 북적이고 다양한 꽃들이 지천인 곳, 자연과 어울림이 언제나 편안한 고희의 청춘이다. 세월의 삶이 어지러울 때, 맑은 바람과 햇살이 말끔하게 헹궈주는 골짜기다. 산식구들이 북적이는 초여름, 여기는 많은 산식구들이 함께 살아가는 조용한 골짜기의 초입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