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난 생각)
창문 열고 바라보는 앞산엔 초록 위에 노랑이 가득이다. 야트막한 앞산을 덮은 보드라운 초록 위에 드문드문 피어있던 금계국이 어느새 언덕을 가득 덮은 것이다. 뜰에는 황금낮 달맞이꽃이 노랑을 달았고, 기린초의 긴 목에도 노랑을 달았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아침, 아무 기척도 없는 골짜기에 뻐꾸기가 슬쩍 울어준다. 여기에 찾아온 맑은 바람은 산의 정기를 가득 품었다. 야, 이런 아침을 맞이하는구나! 시골의 삶이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잡초와 싸우고 벌레와 눈치싸움을 벌이는 하루, 여기에 참새가 하루 종일 지껄인다. 이내, 주인은 모른 척 등 돌리는 사이 앞서거니 뒷거거니 하늘을 날며 지껄인다. 뭔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을까? 마음속으로만 지껄이는 집주인과는 전혀 다른 참새들이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는 앞산, 싱그러움이 가득이다. 초록에 한참을 머문 눈길이 하늘에 닿았다. 먼 하늘에 맑은 구름이 떼 지어 지나간다. 저 구름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아침 생각이다.
아내는 아직도 잠을 자나보다. 시골살이는 언제나 힘을 필요로 한다. 엊저녁 나절, 한참을 바스락거리며 일을 했다. 겁 없이 자라는 나뭇가지를 손질하고, 순식간에 키를 불린 잡초를 뽑았다. 이웃은 무릎을 다친다며 말리지만 어쩔 수 없다며 잡초를 뽑아냈다. 거의 70~80평은 되는 잔디를 관리하는 일, 여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돌아서면 커버린 잡초더미, 힘이 들면 잡초약을 뿌려볼까도 생각해 보지만 아직 견딜만한 체력이다.
잔디밭을 관리하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다. 새벽마다 길쭉한 잔디를 낫으로 깎았다. 요일별로 구역을 정해 깎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어리석음을 알고 이내 포기했다. 자라나는 잡초를 이겨낼 도리가 없어서다. 할 수 없이 잔디 깎는 기계를 사들여 수고를 해야 했다. 한 해, 두 해를 거듭하면서 잔디를 깎는 느낌이 달랐다. 거뜬하던 몸은 어느덧 허덕거리고, 허덕거리던 몸은 감당하기에 힘에 겹다. 여기엔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는 일에 아내가 거들지 않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시골의 살림살이다.
현관문이 열림은 아내가 일어났다는 소리다. 잔디밭에 엎드려 풀을 뽑는 고희의 청춘이 안쓰러웠나 보다. 장갑을 끼고 거드는 아내도 어느덧 고희의 세월이다. 어제 고단함에 늦은 아침을 맞이한 아내, 가끔 힘든다는 남편을 위로하지만 아내도 세월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허리를 부여잡기도 하고, 가끔은 파스를 붙여달라 한다. 둘이 살고 있으니 파스라도 쉽게 붙일 수 있어 다행인데, 언젠가 서러울 날이 오면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한다. 아내와 화단을 정리하는 일은 늘 편안하다. 잡초를 뽑고, 꽃을 보는 일이 시골살이의 일상 이어서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시골살이의 소소한 일상이다. 아내가 작은 텃밭으로 향한다. 상추와 쑥갓을 뜯고, 널찍하게 자란 케일잎을 얻기 위함이다. 초봄에 심어 놓은 우리의 자랑거리인 텃밭에서 푸름으로 가득한 아침거리를 얻는다. 케일에 요구르트를 섞어 만든 싱싱한 주스와 각종 야채샐러드, 여기에 빵 한 조각이면 행복한 아침상이다. 간단하고도 신선한 밥상에 계란프라이 한 개면 더할 것이 없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웃에서 구입한 신선한 계란, 언제나 시끄러움을 주는 청계가 준 선물이다.
새벽부터 들리는 소리는 이웃이 닭과 나누는 이야기 소리다. 밤새 안녕을 묻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웃이다. 얼마나 다정스러운 목소리인지 시끄러운 닭을 탓할 수가 없다. 언제나 가족처럼 살아가는 닭과 이웃, 나는 닭엄마라고 부른다. 한 식구처럼 살아가는 닭과 이웃, 시끄럽다는 닭의 울음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야트막한 앞산은 주인은 달라도 우리의 정원이다. 초록이 흘러내리고, 여기에 노란 금계국이 지천이다. 가끔은 고라니의 놀이터가 되는 정원은 흐릿해진 내 눈의 놀이터도 된다. 낮게 날아가는 산새들, 꽃을 찾아 어른거리는 나비와 벌들이 사시사철 찾아든다. 낮게 바람을 가르는 산까치가 억지를 부리지만 이내 산식구들과 어울리고 만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나의 정원에 바람이 넘어왔다. 산들거리는 초록을 흔들며 얕게 날아가는 산새들이다. 이런 푸름은 한해를 지켜준다. 얼마나 다행이던가! 다시 또 들려오는 소리, 여름 뻐꾸기 소리다. 오래전 내 어머니와 함께 살던 고향집에서 나는 소리다. 커다란 감나무가 지키고, 야트막한 돌담을 두른 초가집, 영원한 추억이 담긴 작은 초가집엔 늘 어머님이 계셨다. 소박한 화단을 가꾸고, 텃밭을 오가시던 어머님이다. 언제나 내편이던 어머님, 아직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기쁜 날도 그리고 슬픈 날도 그 자리에 계시던 어머님, 이젠 가슴에 묻어 놓고 어머님의 세월이 된 철부지 아들이다.
아침나절에 맞이한 나의 시골집, 누구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푸름 속에 맞이한 아침이다. 푸름 속에 꽃이 있고, 산새들이 늘 지껄인다. 심심할 틈이 없는 살골살이다. 뻐꾸기도 찾아오고 또, 고라니도 놀러 온다. 언젠가는 이런 소소함이 그립고도 소중한 하루가 됨을, 많은 세월을 살아 내고서야 알게 됨이 조금은 서럽기도 하다. 골짜기에서 아침마다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 나만의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