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생각)
아침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훅 넘어온다. 와, 이런 바람이 있구나! 골짜기에서 만나는 바람의 느낌은 언제나 같다. 앞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고마움과 반가움에 맞이했던 앞 산, 몇 년 전과는 모습이 완전히 변했다.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나무들, 세월을 많이 살았다고 수종갱신을 해야 한단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냈다. 굵직하고도 튼실한 나무, 그동안의 삶의 모습이 실해 보였다. 세월이 더 가면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수종갱신을 하기 위해서란다. 민둥산이 되면서 여기엔, 어린 자작나무가 심어졌다. 비를 맞고 바람을 맞이하며 자란 자작나무가 이젠 사람 키만큼 자랐다. 하지만 아직도 앞산은 민둥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잘한 풀이 자라났고 온 산을 덮었다. 푸름이 가득하니 언제나 편안함을 주는 앞산은 온전히 나의 뜰이 되었다. 수천 평이나 되는 푸르름은 편안하고도 아름답다. 빽빽한 나무가 부자인 듯했다면 휑한 벌판을 수놓은 초록은 편안한 들판이다. 아침마다 일렁이는 초록은 여기가 골짜기임을 알려주곤 했다. 아내는 여기에 꽃밭을 일구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다. 그냥 두느니 꽃이 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내 산이 아닌 남의 산에 꽃밭을 만든다고? 남의 산이지만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민둥산에 꽃을 피우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의를 하고, 해보기로 했다. 나의 뜰에는 수많은 꽃들이 자리하고 있다. 꽃잔디에 돌단풍, 기린초와 붓꽃, 꽃범의 꼬리에 황금 낮달맞이 꽃, 금계국과 구절초, 맥문동과 나리꽃, 패랭이 꽃과 금낭화, 분홍 달맞이 꽃등 계절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꽃들이다.
수많은 꽃 중에 번식력이 최고인 꽃은 꽃범의 꼬리와 금계국을 빼놓을 수 없다. 구절초도 있고 기린초도 있지만, 아내는 금계국을 키워보자는 제안이다. 대단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금계국, 늦가을에 접어들어 금계국이 검은 씨앗을 영글게 했다. 검게 익어 버린 금계국의 씨앗, 가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금계국을 뽑아냈다. 금계국의 흔적을 모아 앞산으로 옮겼다. 앞산 여기저기에 금계국의 씨앗을 실은 줄기를 옮겨 놓았다.
앞산에 금계국 흔적을 남겨 놓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앞산은 노란 금계국이 자리했다. 곳곳에 노랑이 수를 놓았고, 어느새 산말랭이까지 노랑물이 들었다. 바람 따라 자리를 잡은 금계국에 가을 흔적이 옮겨진 노랑은 앞산을 점차 물들여가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나의 정원 앞산이 노랑물을 들였다.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산말랭이에도 노랑, 중간에도 노랑이 가득이다.
아침 창문을 열자 넘어오는 시원함엔 노랑물도 함께 왔다. 내 산이 아닌 내 정원, 나의 앞 뜰에는 금계국이 한창이다. 내년이면 어떤 모습이 될까? 온산에 노랑이 자리를 잡고 바람이 찾아오면 멋진 광경이리라. 가끔 뻐꾸기도 울어주고 점잖은 고라니도 찾아오면 더할 것 없는 정원이 되리라. 저녁 햇살이 찾아온 해질 즈음, 노랑은 지칠 줄 모르고 빛을 발한다. 이렇게 노랄 수도 있구나!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진한 노랑이다.
푸르름 속에 핀 노랑은 자연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연초록에 짙은 푸름이 뒤를 바쳐주고, 그 위에 노랑이 얹혀있다. 저런 조합이 또 있을까? 초록과 샛노랑은 잘 어울리는 수채화다. 산 아래 초록에 있던 노랑이 위쪽까지 자리했다. 아래부터 피어나던 노랑이 어느새 위에도 핀 것이다. 위쪽엔 어떻게 자리했을까? 한 해가 지나면, 저 노랑은 산 전체를 수놓을 것이다. 연초록을 바쳐주는 짙은 초록, 그 위에 진노랑이 자리를 잡은 아름다운 정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