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더덕을 찾아서)
시골에 자리를 잡고 뒤뜰엔 여러 가지 꽃과 나무 그리고 뜬금없는 더덕을 심었다. 재래시장에서 씨더덕을 구입해 뒤뜰에 심은 것이다. 더덕을 먹거리로보단 냄새가 좋아해서다. 가볍지 않은 묵직함에 너무 밝지 않은 적당한 어두움이 묻어 있는 다정스러운 냄새, 언제 맡아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온 집안에 더덕냄새가 감돌면 분위기가 어떨까? 이런 상상 속에 심은 더덕, 자연은 햇살을 지나칠 수 없었다.
햇살이 가로막힌 뒤뜰의 더덕은 허덕이기 시작했다. 한해, 두 해가 지나면서 더덕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몇 뿌리의 더덕은 온갖 향을 품어냈다. 진한 향을 내어주는 더덕, 그늘에서 허둥대는 몇 뿌리의 더덕이 안쓰러워 햇살이 밝은 곳으로 옮겨 심었다. 더덕은 신이 났다. 잎을 키우고 뿌리를 늘이며 향을 뿜어 냈다. 아침을 깨워주는 신기함이었다.
올해도 더덕은 힘을 얻은 듯이 잎을 내밀었다. 간신히 두 뿌리를 기르며 향을 즐기던 중, 한 뿌리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기어이 이겨내지 못했고, 한 뿌리가 뿌려주는 향은 어쩐지 부족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듯한 더덕향이었다. 더덕향이 아쉽던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나서다 깜짝 놀랐다. 어디서 오는 향인지 풍부함에 넉넉함이 있는 향이다. 한뿌리로서는 어림없는 냄새였다. 어쩐 일일까?
두 뿌리 중 한 뿌리는 버티지 못했고, 한 뿌리만이 고군분투했었다. 여기에 묵직한 향이 더해진 것인데, 습한 날엔 더할 나위 없는 풍부함이다. 어디서 나는 것일까? 발걸음을 옮기며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도랑 건너 앞산 줄기였다. 야트막한 앞산의 끄트머리 어디선가 향이 울려 퍼진다. 틀림없는 더덕이고 묵직함이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어디서 나는 것일까? 목을 늘이고 찾고 찾아도 더덕잎은 보이지 않는다.
늦은 저녁, 아내와 화실에서 오는 길, 에서 내렸다. 깜짝 놀라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것은 묵직한 더덕향이었다. 고개를 늘이고 아무리 찾아도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어느 곳에 있을까? 며칠 동안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더덕은 보이지 않고 향만 넘어온다. 수없이 찾아도 흔적이 없는 더덕의 모습은 포기하기로 했다. 금계국이 한창이고, 초록 속에 묵직한 더덕향을 보내준다. 나의 삶은 어떤 향일까?
혹시, 나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향은 아닐까? 더덕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직한 향을 건네주는 삶은 어떨까? 어림도 없는 기대이지만, 가끔은 꿈꿔보는 고희의 삶이다. 일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향을 내어 주는 일, 어는 어르신의 모습이 떠 오른다. 줬으면 그만이지,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향을 보내주는데 어떤 모습이면 어떨까? 가볍지 않은 묵직한 향을 보내주는 더덕, 긴 장마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늘도 더덕 향을 따라 코를 벌름거리며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