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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채소밭 이야기

(올해의 채소밭)

by 바람마냥

찬 바람이 떠난 골짜기는 봄이 완연했다. 가끔 불어오는 산바람이 서늘하지만, 봄이 왔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난가을 텃밭을 정리하면서 봄농사를 위해, 퇴비와 유기농 토양살충제를 뿌려 놓고 겨울을 보냈다. 새봄이 되어 밭을 파 엎고 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웠다. 대지는 어떻게 숨을 쉴까 쓸데없는 걱정도 하지만, 잡초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다. 거창한(?) 봄농사 준비작업이다. 올해는 무엇을 심어 볼까 고민하면서, 모종 가게를 찾았다. 어떤 모종을 사야 할까?


자그마한 시골에 위치한 모종상회는 오늘도 붐빈다. 모종상회도 서너 군데나 되지만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여서 은퇴나 귀농 한 사람들이 많아서다. 우선은, 해마다 여러 종류의 상추를 심는다. 청량한 공기와 물만으로 자란 상추는 맛과 품위가 달라서다. 아삭하면서도 싱그러운 상추, 누가 먹어도 감탄하는 상추다. 다양한 상추와 쑥갓이 빠질 수 없고, 케일과 청경채도 심기로 했다. 약간의 고추와 토마토도 빠질 수 없는 품목이다.


모종값이 지난해보단 비싸다는 느낌이었지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면 저렴한 것이다. 아내와 정성으로 심어 놓은 작은 텃밭, 상추와 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랐다. 맑은 햇살과 물을 먹고 자란 상추는 꾸밈이 없다. 싱그러움에 살아 있는 듯이 펄럭이며 신이 났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돌보는 재미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다. 조석으로 달라지는 채소밭은 시골의 재미다. 상추는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아침저녁 밥상을 꾸며주는 고명 같은 채소다. 갖가지 채소로 여름을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텃밭의 색깔이 달라졌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토마토가 다양한 색으로 익어가고 있다. 붉음이 있고 노랑이 있으며, 주황빛과 검음이 있다. 해발 300, 조금은 추운 곳이라 도심보다 늦어 벚꽃도 도심에서 끝날 무렵에 피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늦은 산동네, 알록달록한 토마토가 익어간다. 작은 밭을 차지하고 있는 토마토가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났다. 붉은 토마토 한 알 따서 입에 넣는 맛,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청량하면서도 싱그러운 맛, 입안에서 툭하고 터지며 뿜어내는 달큼함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성스러운 맛이다. 물에 닦을 필요도 없이 소매에 쓰윽 문질러도 좋고, 흐르는 도랑물에 슬쩍 닦아도 좋다.


맑은 이슬이 묻어 있는 토마토, 붉음에 주황이 있고, 검음에 노랑의 제 빛으로 물들어 간다. 다양하게 개량된 토마토의 색깔이 눈으로 먼저 맛을 전해준다.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몇 그루의 가지가 보랏빛 꽃을 피웠다. 꽃이 지고 보랏빛 가지가 달려있는 풍경, 작은 텃밭에서나 볼 수 있다. 보랏빛 꽃이 있고, 보랏빛 가지가 열려있다. 여기에 하얀 이슬이 내렸다. 자연이 준 보라에 맑음을 먹은 이슬이 앉은 텃밭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자연의 신비함에 눈이 멀었다. 가지 옆에서 자란 오이도 서두른다.


아내가 심심풀이로 심어 놓은 오이다. 언제 자라 오이가 달릴까 했지만 자연은 무심하지 않았다. 곳곳에 꽃이 피더니 오이가 달린 것이다. 가지가 보랏빛이라면 오이는 노랑이 우선이다. 오이는 노랗게 꽃을 피웠고, 꽃이 핀 자리엔 작은 오이가 숨어있다. 작은 텃밭에 토마토가 익어가고, 가지와 오이가 구색을 맞추어 간다. 먹거리가 아닌 볼거리로 시작한 작은 텃밭, 인간의 노력에 자연은 외면하지 않았다. 햇살을 내려주고, 이슬을 주었으며 바람과 안개를 보태주었다. 자연과 함께 영글어가는 작은 텃밭에서 골짜기의 삶을 알게 한다. 자연은 인간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오늘도 텃밭을 돌보며 물을 주고 또, 잡초를 뽑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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