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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그 어둠을 품고 싶었다.

(오래 전의 밤 이야기)

by 바람마냥

외양간에 어미소가 제 새끼의 볼을 비비는 초저녁, 마당을 어지르던 닭들도 흔적이 없다. 가끔 어미소의 워낭소리만이 들려오는 밤의 초입에 초승달이 구름 속에 달려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초저녁 마당에는 아버지의 수고로 만들어진 멍석이 깔려있다. 언제나 하루의 밤을 마감하는 의식을 위해서다.


귓가를 오가는 모기가 마냥 성가신 저녁, 쑥이 놓인 모깃불이 피워져 있다. 매케한 뿌연 연기가 하늘 속을 헤매고 더러는 반딧불이가 하늘 속을 유영한다. 어떻게 저런 불빛이 나올까?


친구들과 어울려 소백산 등산에 나섰다. 희방사를 지나 오르는 길에 잠자리를 잡아야 했다. 텐트를 치고 고단한 몸을 뉘일 터를 잡았다. 허기를 메우고 앉은 텐트 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으스스함이 몰려온다. 서늘함에 몸을 움츠리고 바라보는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별이 쏟아질 듯 일렁이는 하늘에 반딧불이가 유영한다.


야, 여기에서 이런 빛을 만나는구나! 아버지의 멍석 위에서 만났던 반딧불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난 반딧불이다. 날아가는 벌레 몸에서 나오던 신비한 빛이었다. 컴컴함이 푸근하고 쏟아지는 별빛과 반딧불이가 신비했던 밤이다. 컴컴한 밤이 있어 늘 푸근하고 반딧불이는 살아갈 줄 알았던 그 초저녁은 숨이 차도록 아름다웠다.


야트막한 초가지붕 위에 초승달이 걸려있고 박꽃이 맑게 피었다. 주렁주렁 열린 박이 있고, 맑은 박꽃이 지붕을 덮은 것이다. 감나무가 길게 드리워진 초가지붕 위로 뜬 달이었다. 맑은 박꽃과 달빛이 좋았고 아래로 감싼 어둠은 푸근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저녁은 온 식구가 모여 하루를 마감하는 밤이었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골짜기를 비춘다. 소박한 초승달을 대신해서 가로등이 그 일을 한 것이다. 하늘 속 초승달이 멀뚱멀뚱 바라본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매미가 처절하게 우는 골짜기, 처절한 울음소리는 고라니도 무시할 수 없다. 이산과 저산을 오가며 님 찾는 소리다. 수시로 오고 가는 길고양이는 오늘도 울어댄다. 길게도 울고 짧게도 우는 아기울음소리다. 어둠이라곤 찾을 수 없는 긴 골짜기의 풍경이다.


가로등 불빛과 함께 가슴에 있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포근하던 어둠 속의 그리움도 없다. 반딧불이와 초승달 그리고 초가지붕에 놓은 하얀 박과 그의 꽃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가슴에 하나쯤은 남아 있으리라 했던 그리움의 그림자도 없다. 서둘러 커튼의 힘으로 어둠을 그려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문명의 밝음이 어이없는 친절을 베푸는 골짜기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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