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부담감은
생명이 뱃속에서 성장하는 느낌과 정비례했다.
몸이 힘든 건 당연하다.
일단 외견상으로도 거동이 불편해 보인다.
변비로 고생해 본 사람이라면 조금 상상할 여지가 있다. 며칠간 한 번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배만 부풀어 오르면서 급기야 구토 증세까지 일어난다면 어떨까. 변비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 시험을 앞둔 채 명절 음식 만들기를 도와야 하는 초조한 마음. 가득 찬 책가방을 앞으로 매고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야 하는 신세. 온 세상 사람들의 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 등등. 또 뭐가 있을까.
사람마다 표현하는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하여간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고 또 심적으로 불안에 내내 시달릴 것이면서, 그런 성격인 것이 자명한 마당에 왜 아이를 가졌는지 궁금해하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 부분에 들어갈 이유를 이리저리 적어봤다. 하지만 글을 3번 정도 검토했을 때 이유를 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이유를 매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런 일에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일은
무게감이 있다
그 점에 대해 나는 당사자로서 골똘히 생각해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기에 대한 감정이 생겨났다. 혹자는 그것을 모성애라고 부르는데, 모성애는 그리 간단히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기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보면서 새로운 세계와 만날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아이를 관심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의 고뇌는 말 그대로 나의 고뇌이다.
결국 임신과 출산을 짊어진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통해 태어날 아기이므로, 나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귀차니즘에 지배되어 온 내가 이보다 중대한 일을 또 맡을 수 있을까.
아기를 무사히 낳아야 한다는 책임은 막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고민을 공유할 창구를 찾게 되었다.
그마저도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것이, 주변에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있어도 출산한 지 오래되었거나 가까이 살지 않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무엇보다 과거의 내가 경산 친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되짚어보며 감히 조언이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나는 충분히 이기적이었다.
외로움은 내가 자초한 문제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보라. 미안함을 느끼게 된 계기마저 참으로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뒤늦게 고립감을 느끼게 된 건 애초에 출산이나 육아를 너무 남의 일처럼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가족 시대를 살아온 나는 드라마나 영화 정도를 통해서만 출산 장면을 볼 기회를 가졌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미디어로 본 출산과 육아는 참으로 뭐랄까,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임신 중이거나 육아 중인 친구를 만나면 심정이 복잡했다. 다들 무척이나 힘들어하는데 나는 그 막중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애 키우기 완전 힘들어!
이쯤에서 사촌언니의 조언을 되새겨 본다.
뼈에 사무친 한 마디.
경산 선배들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해석하진 못했지만, 나는 언니의 한 마디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만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아기를 품고 있었고, 언니의 조언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편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의 유명 소설가 유달은 단골식당에서 유일하게 인간 대접을 해주는 캐롤이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식당에 출근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래서 출판 담당자를 갑자기 찾아가 당신의 의사 남편이 캐롤의 아들을 진찰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출판 담당자는 난처해하다 결국 알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반색하며 돌아가려는 유달을 붙잡는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아들이 브라운대학에 들어간 거 있죠!"
"그거 참 기분이 짜릿짜릿하고 흐뭇하겠지만, 이만 가봐요."
나는 병원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다리가 저려서 점점 힘들어지는데요."
"여기 다 역전의 용사라고. 아새끼가 뱃속에서 자라니까 당연하지."
나는 두 번 다시 안 볼 늙은 의사를 말없이 노려봤다.
잭 니콜슨이 분한 싹수없는 소설가나 그 의사는 별반 다를 거 없고, 그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공기를 나눠 마시는 것도 짜증 난다는 감정이 솟구치는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새빨간 타인을 마주한 나의 임신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타인에 지나지 않음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