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정기진료를 받으러 간 날,
힘겹게 체중계에 올라갔다.
강도 높은 입덧 효과로 뜻밖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실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체중계 액정에 뜬 숫자를 보고 약간의 희열을 느끼던 것도 잠시 피로감이 몰려왔다.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지만 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석에 앉았다. 그 병원은 늘 대기환자로 북새통이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사람들 틈에 앉았지만, 심신은 평소와는 매우 달랐다.
빨리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마음이 물질로 형상화되어 목구멍을 탈출하려고 움찔거렸고, 화장실을 몇 차례 들락거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을 펼쳤다. 자리에 돌아올 때마다 간호사들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그곳은 바우처가 팍팍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가까웠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료시설을 찾아 새벽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온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집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입덧이 심해서 어떡하죠?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지 그랬어요."
"하루에... 토를 두세 번 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으니까요."
나는 어렵게 의사와 마주하고 있었다. 의사는 난색 하며 지금은 상태가 심한 것 같으니 입덧 억제제를 처방해주겠다고 하고 수액을 권했다. 나는 수액을 맞고 최대한 많은 양의 입덧 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입덧 억제제란,
새끼손톱 크기 만한 하얀 알약이었다.
이걸 먹으면 당장에 입덧이 멈춘다?
그렇지 않다.
제한된 식단만 먹을 수 있다는 것과 트랙터를 개조한 미니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기분은 여전했다. 울렁울렁울렁 대는 가슴 안고 온 세상 사람들이 한증막에서 디스코팡팡을 타는 듯한 길을 걸어가며, 그래도 구토는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위안 삼았다.
이제 코로 덜 나오겠지.
현대의학은 발전되었다.
특히 한국은 의료서비스가 발달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나는 대도시에 살며 최신 의료 혜택을 (내 돈을 지불하지만) 받고 있었다. 입덧 억제제를 한 알, 두 알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은 확고해졌다. 그리고 토하는 횟수가 줄어듦을 체감하고 어떤 예감이 들었다.
그래, 살은 돌아오는 거야.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지 않았기에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이 어쩐지 거북스러워졌다. 먹으면 토하거나 살로 간다. 무엇이 심적으로 더 나은 것일까. 내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살기 위해 일단 먹는 길을 택했는데, 의외로 많이 먹지 못했다. 구토는 줄었지만 속이 울렁거리는 건 변함없었던 탓이었다. 씨름선수만큼 먹던 내가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허전함은 다시 세상을 별로 아름답지 못한 것처럼 비춰줬다.
김프로의 마음에 단식원에 감금된 몸.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단연코 <맛있는 녀석들>이었다.
그토록 겪고 살의 회귀본능을 알았을 텐데.
마치 전혀 몰랐던 것처럼, 나는 1년 뒤에서야 근육의 방황을 확인하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