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다른 사람도 아닌

by 코알라
날 닮으면 어쩌지?


또 걱정병이 도지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더위에 녹아 퍼져 있었다.

임신 초기의 대표 증상인 입덧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따라 아침 지하철에서 맡은 낯선 이의 겨드랑이 냄새가 자꾸만 코 끝에 어른거렸다. 오뉴월 감기가 생성하는 콧물이 호흡을 방해했지만 콧방울에 매달린 문제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를 말한 김에 주인공 멜빈 유달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듯이 유달은 중증 강박증, 결벽증 환자에 공감능력이 결여된 유명 소설가이다. 특히 비꼬는 투로 말하며 이유 없이 상대방을 힐난하는데, 그가 입만 열면 상대방은 매우 불쾌해지고, 그 역시 짜증이 대폭발 한다. 쉽게 말해 성격파탄자에 가깝다.


'마치 나 같군.'


나는 잠결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일어났다. 이렇게 유달이 되어가는가 싶은 때, 3주 사이에 체중이 6kg가 빠지고 정신이 황폐해졌다.


하필 이천 십팔 연도는.

폭염이 매일 기록을 경신했다.

한반도를 달군 열기에 태풍마저 비껴가는 매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의 주인공처럼 빗물 샤워를 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기어코 영상 40도를 찍은 한 날,

입덧은 생수조차 마시지 못하게 하여 극악의 정신상태를 만들었다.


어느 덧 관자놀이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고 후드득 빠졌다. 오한과 코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집안 곳곳에 코 푼 휴지가 굴러다녔다. 점차 희미해지는 시야에 신음하는 고양이들이 들어왔다.


'미안하구나. 털쟁이들아...'


나는 진심으로 119를 부르고 싶다는 염원만 안고 구역질을 하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밥 달라는 항의에 이승으로 돌아왔다(매우 시끄러웠다).







내 안에서 부정적이고 거친 또 하나의 인격체가 태어난 여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나의 정신과 몸은 알레한드로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는 설탕, 보리차와 과일은 흔쾌히 허락했지만,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간 한식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모조리 강퇴다.

나는 변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데, 나는 아까운 음식을 잠시 위 관광을 시키고 게워냈다. 양치를 하며 후발대를 토해내자 세상은 정말 아름답지 못했다.


뜨거운 물에 일그러진 플라스틱 페트병처럼,

나는 뒤틀린 심사로 삶을 적대시했다.


그날은 정말로 아기가 걱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