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0개월

by 코알라

10개월의 추억.

다른 말로 근심이다.


아기가 생긴 것을 산부인과에서 확인하고부터 나는 임신확인서를 양손에 들고 자타공인 임산부가 되었다.


그날,

산모수첩을 주지 않는 간호사에게 왜 주지 않느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귀가하여 남편과 대면했다.


무슨 일이든지,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나는 내적 갈등이 심한 편이다. 당시 심정을 고양이들의 행동 양상에 빗대어 말하자면, 한 마디로 히스테리다. 임신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것은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방광염도 아니고 보행의 자유를 앗아간 인대파열도 아니고 세균전을 펼친 부비동염도 아니었다.


일일연속극에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배우자와 환호성을 외치는 장면은 드라마라고 생각해두자. 내게 있어서 말이다.


그러나 새 생명의 방문을 진심으로 반기는 것은 참으로 건강하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강조하자면 기뻐하는 것이 여러모로 건강한 반응일 것이다. 내 경우는 특별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당시 나는 지나친 불안증을 앓고 사는 노이로제 환자였다. 기쁨도 온전히 즐기지 못하던 나의 심리적 상태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서, 아마도 이 글을 보고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그렇지 않은가. 다들 마음 속에 버리지 못한 비 맞은 박스 하나 쯤은 갖고 있지 않은가.


산모수첩 달라고 했어야지
3개나 사서 결국 하나 남음
정말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받았어야 함을 며칠 후에야 깨달음




쉽게 생각하자면,

새 생명의 잉태는 중대한 일이다.

낳는 게 다가 아니다.

출산 후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불면증과 지독한 입덧은 서막에 불과하다.

며칠 밤, 나는 우리 집안에 몹쓸 유전병은 없는지 왜 내 발가락은 이 모양인지 안면홍조증도 유전인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젖은 귀지 등등 온갖 걱정에 시달렸다. 그리고 10개월 동안 걱정은 일상이 되어(실제로 양치질보다 더 많이 했을 듯), 위로하며 들어주던 남편조차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어갔다.


"낳으면 다 알아서 큰다."

딱히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물론 양육의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한 덕담일 것이다).


'난 불안하다고.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설마
알아서 클 리 있겠는가


'완전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불안해.'


나는 속으로 불안송을 무한반복하며 한강변을 걸었다. 밤바람에 거칠게 일렁이는 한강물을 바라보았다.

'검은 물이다.'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는데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거울 속의 나는 머리가 많이 새었다.


무엇보다 나는 알고 있다.

돈이 든다.


애 키우는 데 돈 엄청 들어!


사촌언니가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언니는 육아선배이자 출산 후유증, 육아의 현실, 두려움, 압박감이 얼마나 되는지 사실되게 알려준 인물이다. 날카롭고 험난한 조언의 말미에 '물론 아기는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급마무리되었지만, 어쩐지 잘 들리지 않았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

이 말은 매사 나를 이끄는 슬로건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당장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제한적이고 많이 버는 편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히 육아에 몰입해야 하는 실정이기도 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상당했다.

누구를 탓하랴. 자책밖에 더 할 일이 없을 때면 다시 한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강변을 걸으며 밤하늘을 보면 바람에 스치우는 별이 보이고 구름도 보인다.



하나의 초음파 영수증과
별 하나의 기저귀,
별 하나의 분유를 헤며,
나는 오늘도
낚시꾼의 구부정한 등 뒤를
걸어갑니다

어머니,
세상에는 왜 그리
젖병이 많은지 모르겠지만서도,
분유가 더 중하다는 걸 깨닫고
젖병에 대한 상념도
잠시 잊히지 마련입니다



그날 밤, 찬바람에 몸을 맡기며 열심히 걸었다.

나를 낳아 길렀을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지구 끝까지 갈 기세로 집을 나섰는데,

내 딴에는 정말 열심히 걸었는데,

돌아보니 얼마 못 갔다.

어차피 많이 걸어봐야 서울 안이다.


내 근심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