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를 배려하지 않는 팍팍함? 넌 아직 순수하구나.
-그 마음 너라도 변치말기를.
"이제 제 얘기 시작해도 되죠?"
서울로 이직한 박대리가
내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지 얘길 시작한다.
"워낙 유명해서 오픈런해야 하는 철학관에 갔거든요?"
"몇 시에 갔어?"
"오픈이 9시인데 새벽 6시 30분에요."
"부지런도 하다. 그래서?"
"친구가 2등, 제가 3등. 제 뒤로 몇 명이 더 있었어요. 오픈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오시더니,
어제 사주를 보고 갔는데 못다 한 질문이 있다며 1분이면 된다고 본인부터 들어가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건 좀 그렇지 않나?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과장님이라면 그 할머니한테 뭐라고 할 거예요?"
""할머니, 저만 양보해서 될 일이면 해드릴 수도 있지만 제 뒤에 사람들 순번이 하나씩 밀리는 거라서 안될 거 같아요."라고 얘기해야지. 그게 나하나로 끝날 일은 아니니까."
"흐음...."
"그리고 본인은 1분이면 된다지만, 막상 들어가면 그게 또 그렇게 안된다니까~ 질문할 게 더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맨 앞에 계신 아주머니가 "양보 못한다. 난 모르겠다."람서 아예 무시하셨죠."
"그래, 솔직히 그게 맞지... 다들 새벽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 할머닌 어떻게 됐는데?"
"옆에 계속 같이 서 계시다가, 2등인 제 친구가 들어갈 차례가 되자 밀치고 그냥 들어가 버리셨어요."
"그 행동도 어이없네... 정말 1분 안에 질문하고 나왔니?"
"아뇨, 한 5분? 그래도 빨리 나오시긴 했어요. 다들 어이없어서 멀뚱멀뚱했죠. 그런데 좀..."
"뭐가?"
"아뇨, 분명 그 할머니 행동이 잘못된 건 알겠는데... 근데 좀... 뭔가 양보하지 않는 우리의 팍팍함이 속상해지는 하루였어요."
"뭔 생뚱맞은 소리야."
"예전엔 그런 양보도 대수롭지 않게 서로 하려고 했었는데, 이젠 이 정도의 여유도 없는 삶을 모두들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이상한 의미 부여하지 마! 할머니의 행동이 잘못된 거지,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정 없는 게 아니라고!"
"누가 뭐래요... 할머니는 분명 잘못했는데, 그냥 그랬다고요..."
"네가 아직 새치기를 많이 당해보지 않아 순수하구나. 그 순수함이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저 순수해요? 좋아요! 그럼 저 이제 나다니지 말아야겠어요. 세상의 때를 최대한 안 묻히려면 외톨이가 되는 수밖에요."
"그래라... 또라이야..."
가끔 엉뚱한 대답을 해대는 박 대리와의 대화는 꽉 막힌 내게 '아, 그럴 수도 있으려나?'라며 타인의 행동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여전히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