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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25. 2023

사장님이 얼굴 보고 직원을 뽑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장님의 첫 면접자 현장투어, 뒷 일은 인사팀의 몫.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전형적인 I 성향의 나지만, 가끔씩 밥이나 먹자며 연락 오는 이전 회사의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은 꽤 즐겁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몇 번이나 회자되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장님의 면접자 현장 투어' 사건이다.


 7년도 더 된 일이다.

매출도 좋고, 노조와 지속되던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나름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영업팀 소속이었던 '포장반'은 20년 넘게 재직 중이었던 직장님과 사원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포장반 사원이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었다.


긴급으로 구인 공고를 낸 지 하루 만에 지원자가 10명이 넘었고, 영업팀장님과 회의 끝에 1차 면접자 3명을 뽑았다.


 "포장반 서류 합격자 이력서 한번 봅시다."

 사장님이 "내가 서류면접까지 관여해야 하냐? 팀장들이 제대로 하는 일이 도대체 뭐냐? 1부터 10까지 내 손을 다 타야 되냐?"라며 최종면접에만 관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서류 합격자를 뽑은 겁니까?"


 "동일 업종과 직무 경력 기준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노안으로 제품이나 제대로 보이겠어요? 젊은 사람으로 뽑아요. 젊은 사람으로."


 본인도 서류볼 때는 돋보기를 꺼내드는 60대이면서 나이 들먹이며 무시 발언 장전이다.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참 듣기 거북하다.



 "정 대리가 20대~30대로 아무나 선정해 봐요. 나는 더는 이력서 안 볼랍니다. 어차피 사장님이 마음에 드는 사람 뽑을 텐데 봐서 뭐해요? 할 일도 많았는데 잘 됐네."

 쏟아지는 사장님의 지시들 가운데 짬을 내어 꼼꼼히 이력서를 검토했던 영업팀장님은 기분이 상한 듯, 나에게 이력서 검토 및 1차 면접자 선정 업무를 넘기며 한숨을 쉬셨다.


 그렇게 20대 중반 ~30대의 지원자 중 2명의 여성 지원자를 1차 면접자로 선정했고, 영업팀장님도 이력서를 훑어보시곤 적어도 경력이 2~3년은 있는 지원자들에 나름 흡족해하시며 면접 일정을 잡아보라 지시하셨다.




 면접 날 두 지원자 모두 면접 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해 있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간단한 차를 내어주고 30분의 시간차를 두고 1차 면접을 시작했다.

 그중 두 번째 면접자는 29살 여성으로 한눈에 봐도 '예쁘게 생겼다'라고 느껴질 만큼 콧대가 오똑하고, 눈엔 짙은 쌍꺼풀이 있었다.


 "OOO 씨, 면접장으로 이동하실게요."

첫 번째 면접자의 면접이 끝나고 두 번째 면접자를 면접장으로 인솔하는 도중 출근하던 사장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정 대리, 이 분이 오늘 포장반 경력직 면접자인가요?"


 "네, 오늘 마지막 면접자입니다."


 "그렇군요. 면접 잘 보세요."

 저 연예인병... 세상 신사네, 신사야.


 사장님은 면접자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대략 30분 정도의 1차 면접이 끝나고, 두 번째 면접자에게 1차 면접 합격 여부 및 최종 면접 일정 통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영업팀장님이 부랴부랴 다시 면접장으로 들어오셨다.


 "정 대리, 사장님이 출근하신 김에 최종 면접도 오늘 봤음 하시는데?"


 "네?"

 영업팀장님께 물어볼 말이 있다는 눈빛을 보낸 뒤, 슬쩍 자리를 옮겼다.


 "이 분이 1차 면접 합격인가요? 그럼 첫 번째 면접자 분에게 불합격 통보하면 되나요?"


 "나는... 첫 번째 면접자 경력이 더 마음에 들긴 하는데... 오다가 혹시 사장님 마주쳤어?"


 "아. 네, 복도에서 마주쳤어요."


 "인상이 좋다나 어쨌다나. 어휴... 난 모르겠다. 사장님 원하는 대로 해드려."

 알아서 하는 게 없다며 다그칠 땐 언제고, 이젠 별 걸 다 관여하려 한다며 짧은 하소연을 하시곤 영업팀장님은 사무실로 가셨다.


 "사장님께서 외부 일정이 많아서 최종 면접은 늘 다른 날 진행됐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사장님께서 외부 일정이 없으셔서 1차, 최종 면접을 같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최종 면접 끝나고 접견실에서 대기하여 주시면, 제가 합격통보 일정 알려드릴게요."


 가끔 최종 면접일 전달 차 1차 면접 합격자에게 전화하면, "네? 또 거기까지 가야 하나요?"라며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내는 면접자도 있었다.

 이번엔 그런 하소연은 듣지 않아도 되겠다며 좋게 해석하려 노력했다.


 "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운 좋게(?) 두 번째 면접자는 최종 면접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면접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사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 대리, 면접자 데리고 현장 투어 다녀올게요."

 

 "네? 현장 투어요?"


 "본인이 어떤 곳에서 근무하게 될지 면접자도 알아야지."

 언제부터? 왜 저래?


 '언제부터... 면접 도중에 근무지 투어를 직접 시키셨어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사장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와 팀장님은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어이없어 서로를 쳐다봤다.


 "사장님 원래 면접자 현장 투어 직접 시키셨어?"


 "아니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으셔?"


 "네, 한 번도 본인이 직접 면접자 데리고 현장 투어하신 적 없어요."


 고객사 방문 및 그룹 임원진 한국공장 방문, 파업으로 인한 관리직 현장 투입과 같은 굵직굵직한 일이 아니면 현장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사장님이 여성 면접자를 데리고 현장 투어 중이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정 대리님, 지금 사장님이 현장 투어 시키고 있는 여성분 누군지 아세요? 포장반 면접자인가?"


 궁금한 건 못 참는, 모든 소문의 사실여부는 본인이 가장 먼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가공반 반장님이 우리 사무실까지 올라와 물었다.


 "아... 네 맞아요. 포장반 면접자인데, 최종합격될 것 같아서 미리 현장 투어 중이에요."

 순간 실이 아닌 말을 해버렸다.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선 최종합격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사장님이 직접? 처음 있는 일 아냐?"


 "아~ 원래는 영업팀장님께서 현장 투어하셔야 했는데, 다음 주 예정된 그룹 회의 자료 준비로 정신없으셔서 최종 면접관이신 사장님께서 어쩔 수 없이 직접 투어 시키고 계세요."

 또 사실이 아닌 말을 해버렸다. 영업팀장님이 그룹 회의 자료를 만드시고 계신 건 맞는데, 제출 기한이 여유로워 정신 없을 정도로 바쁘시진 않다.


 "인사팀장은 뭐 하고?"

본인 일이나 하시지, 별 참견을 다 하신다.

마침 팀장님이 자리에 없어 망정이지, 계셨음 대놓고 질문까진 차마 하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했을 반장님이다.


 "팀장님 지금 은행 외근 중이세요. 급한 일이신 듯해 보였어요."

느는 건 거짓 말뿐인 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장님이 직접 면접자 현장 투어 시킨 적이 있어? 재직자 현장 투어도 안 시키시는 분인데... 예뻐서 마음에 드신 거 아냐?"

반장님, 이 질문이 하고 싶어 참 많이도 돌고 돌아 질문하시네요.


 "반장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예쁘다는 건 반장님  개인적인 생각이시잖아요. 사장님 관리직 사원들 데리고  현장 투어 하신 적 있으세요. 괜히 이상한 소문내시면 안 되세요~ 아셨죠?"

 사실 그런 건 없었다, 관리직 사원 현장 투어 따윈.


 "벌써 현장에 소문났어. 사장이 얼굴 보고 직원 뽑았다고."


 아무리 감출래도 감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평소 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며, 열정적으로 각 공정별 기계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있을 사장님의 수상한 행동들이 낯설다 못해 어색했을 직원들의 눈엔 훤히 보였을 '사장님의 흑심'이다.



 

 예상대로 두 번째 면접자가 최종 합격했다.

조용한 성격의 두 번째 면접자는 수다스럽지 않고, 열심히 배우려 해 포장반 반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다.

 3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영업팀장님이 헐레벌떡 우리 사무실로 들어왔다.


 "정 대리, 혹시 얘기 들었어?"


 "네? 무슨 얘기요?"


 "이번에 뽑은 포장반 OOO 씨 그만두겠대."


 "갑자기요? 왜요?"


 "몰라, 몸이 안 좋아서 그만둔다는데 입사할 때 제출한 건강검진표엔 건강에 문제없었지?"


 "네... 특별히 문제 되는 부분은 없었는데... 어디가 아프대요?"


 "몰라! 일하다 아파서 그만두는 거니까 산재 신청까진 안 할 테니, 권고사직 처리 해달래."


 "네? 산재 신청요? 확실히 산재예요? 일 하다가 어디 다치신 거예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파서 그만 둘 정도의 일을 시켰겠어? 포장반 반장님 말로는 실업급여 때문인 것 같대. 전 직장 근무 기간이랑 합치면 딱 실업급여 수급 조건이 되나 보더라고. "


 골치가 아팠다.

다시 포장반 구인을 진행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고, 산재를 들먹이며 권고사직을 요청하는 것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골치 아픈 일이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생각하기 귀찮다'이다.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바로 포장반 구인공고도 다시 내고."


 "사장님, 권고사직이 아닌데 허위신고로 퇴사자가 실업급여 수급을 할 경우 사업주도 처벌될 수 있습니다.  위법의 이력을 만드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합니다."


 "그럼, 정 대리가 연락해서 잘 해결해 봐요. 거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여러모로 사람 참 번거롭게 하네요."


 결국 뒤처리는 내 몫이 되었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이틀째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OOO 씨, 우리 회사는 퇴직자의 실업 급여 수급을 위해 허위신고는 하지 않습니다. 업무 중 다치신 곳이 맞다면, 회사에서 치료비를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말씀하신 대로 산재신청 하셔도 됩니다. 연락 주세요.


 문자를 보내고 몇 시간 채 되지 않아 그녀에게 짧은 답이 왔다.


-됐어요. 그냥 퇴사할게요.


 마음고생에 비해 가볍게 끝나버려 다행스러우면서도 괘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현장 반장님들은 뒤에서 사장님을 놀려댔다.


 "여자 밝히는 사장이 이상한 사람 뽑아선 결국 여러 사람 힘들게 했지. 다 늙어서 무슨 추태래."


 "정 대리, 남자 뽑아. 남자. 정 대리만 뒤처리하느라 고생했겠네."


 "생각할수록 변태 같다. 사장."


 "얼굴 보고 뽑으셨던 게 아니고 동일 업종 근무자로 경력도 꽤 괜찮았어요. 1차 면접 때 영업 팀장님도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었고요. 그러니까 자꾸 이상한 소문내시지 마세요."

 나 이렇게 거짓말하다가 지옥 가는 거 아냐?

그렇게 나는 한동안 사장님의 구린 추문을 덮어대느라 거짓말쟁이로 살아야만 했다.




 "그때 기억나? 사장이 포장반 여직원 얼굴 보고 뽑았다가 뒤통수 맞은 거?"

 오랜만에 만난 구매팀 김 부장님이 또 그때의 일을 안주삼아 꺼냈다.


 "알죠 알죠. 그 얘기 OJT 현장 교육 때마다 현장 반장님들이 신입 사원들한테 얘기해 주신 거 알아요? 그래서 모르는 직원이 없었잖아요~"

 받아치는 박 대리의 이 대사도 몇 번이나 들었던 대사다.


 "과장님, 그거 정말이에요? 사장님이 얼굴 보고 마음에 들어서 유일하게 직접 현장 투어까지 시키셨다는 게?"


 "아니야~ 얼굴 보고 뽑았던 게 아니고, 면접자들 중에 제일 괜찮았어."


 그만둔 회사에,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사장이었지만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선 사장님을 두둔하고 있다.

 존경심도 없는 사장을 내가 왜 굳이 이렇게 편들고 있나 생각해 보았다.


 내가 14년이나 몸 담았던 회사가 경력은 깡그리 무시하고 얼굴이나 보고 사람 뽑는 그런 저급한 회사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욕할 거리가 천지였던 사장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를 속여왔냐며 동료들에게 서운한 소리를 이제와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과연 진실까지 알고싶은 사람이 있기는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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