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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Sep 01. 2023

너에게 "그만둬버리지 뭐."라는 말의 의미는 뭐니?

-퇴사를 습관처럼 얘기하는 직원.

  매출이 줄었다며 걱정하던 동생의 말대로 목요일의 와플가게는 이전보다 훨씬 한가했다.

허니브레드 와플과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매장 손님에게 전달하고 돌아서자 뒷문으로 출근하는 남자 매니저가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님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밖에 엄청 더워요."


 "진짜? 나 출근할 땐 비 엄청 왔는데."


 새벽부터 굵은 장대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지금은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해가 쨍쨍했다.

 나만큼 극단적인 날씨군.


 "아르바이트생들 이번 달에 많이 그만둘 거 같아요."


 "아 진짜? 왜? 곧 개학인가?"


 "그런 것 같아요. 평일 오후 아르바이트생이 개학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주말 오전 아르바이트생은 일한 지 꽤 오래됐는데... 힘든지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개학도 하기도 하고."


 "주말은 오전, 오후 상관없이 많이 바빠서 힘들긴 하겠다... 그렇구나.. 그럼 구인광고 내야겠네?"


 "네, 다들 그만두니까 힘들어요."


 "아직 그만둔 건 아니잖아? 어떤 게 힘들어?"

 

 "모르겠어요. 그냥 다들 그만둔다고 하니까..."


 우울할 만하다.

 7월에 입사해 매니저, 아르바이트생 직급 상관없이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 동료들과 이제야 서로 친해져 손발이  맞아가려 하는데 본인만 이곳에 남겨진 기분에 왠지 모를 울적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동료들의 퇴사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밀려오는 씁쓸함과 외로움, 이따금 도태되는 듯한 기분에 하루 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힐 때가 있었다. 남자 매니저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되어서 어떤 말을 해야 축 처진 기분을 조금이라도 올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확 그만둬버릴까."


벌써 두 번째 듣는 말이다. 남자 매니저의 '그만둬버릴까?'라는 이 말.
 
 혼잣말치고는 꽤 컸던 매니저의 한 마디에 방금 전까지 내가 느낀 그를 향한 공감이 깡그리 사라졌다.

왜냐하면 나는 가볍게 또는 습관적으로 '퇴사'를 입 밖으로 내뱉는 직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다 보면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을 일이 많다.

 업무가 힘들다던지, 어렵다던지, 부당하다던지, 직장 내 인간관계에 적응이 쉽지 않다던지 등등 각종 민원을 접수하고 면담을 진행하다 보면 직원마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뉘앙스와 단어들이 있음을 알 게 된다.

 그리고 이 '말의 습관'은 대부분 그들의 됨됨이와도 직결된다.



 입사 때부터 "5년만 다니고 그만둘 거예요."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품질팀 사원이 있었다.


 아버지가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데, 쉬운 길로 가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내 보이고 싶어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고 했다.

 우리 회사 직원 중에 혼자 힘으로 입사하지 않은 직원이 있던가?

 당연하고 평범한 보통의 일을 본인이 하면 거창한 일인 듯 부풀려 얘기하는 습관이 있던 직원이라 관리직 사이에선 '엄살 심한 사원'이라고 불렸다.


 품질 팀장님과 본인의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다는 둥, 이 회사엔 미래가 없다는 둥 신입사원 때부터 불만만 늘여놓던 그가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은 "5년 동안 경력 쌓고 나갈 거예요."였다.


 "제가 팀장님만큼 연봉받으면 군말 없이 이 일까지 했겠죠! 팀장님이 하세요. 전 못해요! 아님 저한테 그 연봉을 주시던가."라며 되바라진 말을 직원들 앞에서 팀장에게 쏘아붙이던 그였지만, 사내에 몇 안 되는 그룹회의 참석과 해외출장이 가능한 '영어 능통자'란 이유로 사장님은 모른 체했다.


 품질 팀장과의 불화가 심해지고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자, 사장님 권한으로 본인이 원하던 해외영업팀으로 대리로 승진까지 시켜주며 부서전환을 해줬지만 정말 5년 되던 해에 퇴사했다.

 

 "거 봐요. 제가 5년만 다닌다고 했죠? 여긴 미래가 없어요. 없어."

뭐 대단한 약속을 지켜냈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대리에게 말 대신 썩소를 날렸다.


 "과장님, 이 대리님 말처럼 진짜 우리 회사 망해요? 완전 쓰레기 회사라고 옥상에서 욕하고 있던데..."

옥상에서 동기 혹은 현장 반장들에게 귀신 들린 듯 쉬지 않고 회사 욕을 해대는 이 대리를 목격한 갓 입사한 사원들이 불안해하며 나에게 물었다.


 "어차피 퇴사할 사람이야, 이 회사가 본인과 맞지 않아서 퇴사하는데 좋은 말이 나오겠어? 흘려들어."

 

 "과장님, 이 대리 그렇게 입사할 때부터 그만둘 거라고 하더니... 정말 퇴사하네요. 자기 사업할 거라던데 왠지 멋있는 거 같아요. 저는 여전히 이렇게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데..."

 이 대리 동기인 생산팀 이 대리의 얼굴에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자기 사업은 뭐 쉽겠니? 거창하게 얘기하는 거 좋아하잖아. 비교하다 보면 끝도 없어."


 '퇴사'가 입버릇이던 이 대리와 잠시라도 대화를 나눠 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워져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감정은 옮는다.

 긍정과 희망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하늘을 날 수도 있을 만큼의 용기가 생기지만, 현실 부정과 의심만 가득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잘 해내고 있다가도 내 앞 날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필요이상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 대리의 퇴사 소식이 전 직원들에게 알려지고, 그와 친하게 지냈던 기술팀 사원이 미래가 없는 회사라면 지금 빨리 그만두는 게 맞지 않겠냐며 면담을 요청해 왔다.


 "직접 경험하고 느끼기 전엔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적어도 삼세번 신중히 생각해 보라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어쨌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




 "정 과장, 박 대리 사실 나 회사 안 다녀도 돼요. 우리 집에 돈 많아. 박 대리는 나한테 몇 번 들어서 알겠지만, 부친이 부동산 사업을 하고 계셔서 집에 땅도 많고, 내가 그 일 받아서 하면 돼. 굳이 이렇게 여기서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지 않아도 될 만큼 능력 있다고. 하지만 회사의 안정화를 위해 내가 나 하나 희생하고 있는 거야."

 퇴사한 지 1년 반이나 되었지만, 차장님의 하소연을 쉬지 않고 써내려 갈 만큼 아직도 좔좔 외우고 있다니.


 팀장님의 퇴사로 당분간 재경팀 팀장 대행을 맡게 된 차장님은 하루에 열두 번 팀원인 나와 박 대리를 불러놓고 이 말을 해댔다.

 바빠죽겠는데 불러놓고 한다는 소리가 언제든 그만둬도 될 만큼 집에 돈이 있다는 돈 자랑과 사장님이 사정해서 팀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본인은 승진이나 연봉 인상엔 전혀 관심 없다는 '무소유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입시켰다.


 뭐가 또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한참 한숨을 쉬어대다 "둘 다 시간 되면 잠깐 회의실에서 볼까요?"라며 일하고 있던 우리를 불러내 한 시간의 돈자랑을 듣고 나온 어느 날이었다.

 몇 번이나 들은 차장님의 돈 자랑엔 재미도 감동도, 깨달음도 없다, 듣기 싫어 죽겠다는 생각만 할 뿐.

 별의 별일 다 겪은 나도 가만히 듣고 앉아있기 힘든데, 팀의 막내인 박 대리는 오죽할까 싶어 잠깐 회사 앞마당에 바람 쐬러 다녀오자며 불러냈었다.


 "차장님이 하는 말 다 너무 마음에 담지는 마. 세상에서 지가 제일 힘들고 딱한 줄 아는 사람이잖아."


 "네, 저 괜찮아요, 과장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자꾸 퇴사 들먹이면서 3년 안에 그만둘 거라고 얘기하는 것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설령 차장님이 그만둔다고 너한테 생길 피해는 전혀 없으니까."


 "네, 알아요. 차라리 정말 그만둬버렸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그만둔다는 말을 몇 년째하고 있는 건지, 듣기 싫어죽겠어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너도 그만두고 싶니?"


 "아니요."


 "오~ 의외로 단단한데?"


 "당연하죠,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죠. 저는 저렇게 말뿐인 퇴사는 절대 안 할 거예요. 이직할 회사 다 구해지면 그때 얘기할 거예요."


 팀장의 부재와 팀장 대행 중인 차장의 돈 자랑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색 없는 박 대리가 아주 기특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14년 인사팀 업무를 맡아해서 생긴 지독한 후유증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즉흥적, 감정적으로 자주 '퇴사 발언'하는 직원을 신뢰하진 않는다.

 그 직원의 무의식엔 늘 '퇴사'가 자리 잡고 있어서 본인도 모르게(어쩌면 본인이 알지만 그럼에도) 일에 영향을 주거나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여러 번 봐 왔기 때문이다.

 혹은 '퇴사'를 핑계 삼아 다른 원하는 게 있음을 알리려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연봉 인상이라던지 진급이라던지 아니면 사장님을 독대한 거창한 술자리 라던지.


 그만둘 거라는 말을 내뱉는 건 쉽다.

 쉽다고 막 내뱉다 보면 나도 쉽고 가벼운 사람이 되어 있다.

 "그만 둘 생각을 할 만큼 네가 그동안 힘들었구나."가 아니라, "나약한 놈, 또 시작이네. 어휴 듣기 싫어."가 돌아온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남자 매니저의 하소연에 공감해 주지 않을 작정이다.

가볍게 습관적으로 '그만둔다'라고 말하는 매니저의 우울감에 진심으로 격려해주려 했던 내 마음이 아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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