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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Nov 25. 2019

너만의 탄생 설화_태몽

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임신편3

태몽 : 아이를 밸 것이라고 알려주는 꿈     


나는 남편과 집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주택과 빌라를 가로지르는 골목 사이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삼색 아기 고양이가 바들바들 떨며 우리를 보며 울고 있었다. 앞발에 피가 엉겨 있다. 우리는 생수를 꺼내 뚜껑에 물을 따라주고 휴지에 물을 묻혀 피를 닦아 주었다. 아기 고양이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이제 우린 갈게, 안녕! 우리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삼색이는 우리 뒤를 따라온다. 집까지 들어온다.     


아직 임신 테스트기 확인 전, 내가 꾼 이 꿈은 태몽의 전형적인 구조와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동물의 등장, 나와 남편이 함께 움직인 것, 집 안까지 따라온 결말. 


태몽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비슷하다. 동물이나 과일, 예사롭지 않은 생명의 기운을 가진 물건이 나타나 꿈속 주어인 ‘나’와 접촉하거나 아예 몸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검은 뱀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내 남동생을 임신했을 땐 검은 개가 다리를 무는 태몽을 꾸셨다고 했다. ‘아이를 배다’에서 ‘배다’라는 단어의 어원이 사람의 ‘배’와 동사를 만드는 어미 ‘-다’가 결합된 것이니, 인간의 원형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아이를 밴다는 행위가 몸속으로 새로운 생명이 결합되는 형식으로 이미지화되어 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내 태몽은 내 몸이 집으로 확장되어 내 집에 새로운 생명체인 삼색 고양이가 찾아드는 것으로 이미지화된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의 상징성, 남편이 동행한 꿈속 여정이 ‘가족 만들기’에 초점을 맞춘 태몽이라고 의미를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치즈나 장난감으로 유혹한 건 아니었지만ㅎ


엄마는 내가 이미 태몽을 꿨다는 말에 몹시 아쉬워했다. 꿈에 예민하여 종종 다른 이의 태몽이나 길몽을 대신 꿈꾸시던 분이라 딸의 태몽을 빼앗긴(?) 것에 계속 아쉬워하셨다. 그런 엄마의 꿈 기질을 물려받아 내 아이에게 전해 줄 탄생 설화를 꿈으로 완성했다.      


꿈의 해석은 정신의 무의식적 활동을 알게 되는 왕도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꿈은 신기하다. 잠에서 깨어 의식적으로 활동할 때는 비이성적이라 여기며 망각할 사소한 이미지 하나가 꿈속에서는 삶을 예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격상된다. 특히 태몽은 예로부터 아이의 탄생과 함께 성별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신탁으로 중요시되었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고 우리는 인터넷에 ‘고양이 태몽’을 검색했다. 두뇌가 영특하고, 외모가 출중하며, 보통 딸 태몽이라는 지식인 답변에 남편이 활짝 웃었다. 태몽 성별이 꼭 맞지는 않는다는 내 말에 남편은 삼색 고양이는 99%가 암컷이 아닌가, 우리에게 딸이 찾아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 말했다. 나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는 쪽이라 남편의 해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꿈을 통해 삶을, 미래를 해석하려 시도한다


꿈이 아닌 과학으로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는 16주 차, 뱃속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완강하게 자신의 성별을 알리지 않아 다음을 정기검진을 기약하고 돌아선 어느 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특강을 하러 온 꿈을 꾸었다. 난리가 난 학생들을 통제하며 내가 가장 먼저 사인을 받았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사실 지금 임신 중인데 너와 같이 빛나는 아들이면 좋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고 꿈속에서 그 아이돌은 활짝 웃으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21주 차 정기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파란색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셨다. 


희귀한 수컷 삼색 고양이 태몽에 인기 아이돌이 등장한 꿈까지, 우리 태몽은 영웅 설화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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