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로 된 다리를 건너고 세상이 바뀌었다

육아보다 쉬운 소설 쓰기 : 임신편1

by JiwooRan

나는 종종 소설 쓰기를 임신과 출산에 비유하곤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내가 탄 버스가 한강대교를 건너던 중,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여자가 문득 떠오른다. 그녀는 해가 지며 붉게 물든 강을 배경으로 느리게 걷고 있다. 왜 그녀는 다리를 다리로 건너가는 중인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트를 꺼내 그녀에 대해 첫 문장을 쓰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잉태한다.


잉태된 주인공들이 모두 태어나는 건 아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썼던 수십 권의 노트에 태아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그 혹은 그녀들이 수두룩하다. 다리를 건너는 그녀는 무사히 태어났다. 140번 버스를 타고 서울 한 바퀴를 돌다 한강대교 전망 카페 역에서 내려 이슬비를 맞으며 다리를 건너는 그녀는 단편 <140번 버스의 아이들>에서 살게 되었다.


IMG_5415.JPG 2013년 실제로 한강대교를 건너가며 목격했던 일몰


첫 소설집의 출간일이 확정됐던 5월 첫째 주, 나는 길을 걷다 에피파니Epiphany를 경험했다. 나는 이 단어를 나중에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다 알게 되었다. 원래 뜻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목격하고 경배한 날로 나타남, 출현이라는 의미다. 조이스는 이를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서 삶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갑자기 깨닫게 되는 순간으로 표현한다. 그날 나는 길을 걷다 가벼운 멀미 증상을 느꼈다. 숙취나 소화불량, 과식으로 인한 울렁거림과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멈춰 섰다.

이건 멀미가 아니다, 이 현기증은...

나는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다음 날 아침 첫 소변을 받았다.


두 줄이었다.


내가 느낀 건 멀미가 아닌 초기 입덧이었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운 상태는 수많은 증상을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 정확히 임신을 직감했던 그날의 내 본능은 ‘출현’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 이 아이는 우리 앞에 출현했다. 임신 테스터기의 두 줄로 간명하게 그려진 다리를 건너 저 쪽에서 이쪽으로.


IMG_0151.JPG 임신 초기, 심장소리 듣기 전 임산부 배지 없이 눈치보며 앉았던 핑크좌석


나 역시 일종의 다리를 건넌 셈이다. 나의 몸, 나의 상식, 나의 세계가 모두 바뀌었다. 입덧은 뒤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멀미 증상이었다. 첫 책 『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최종 교정본을 확인하고 책이 나올 때까지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침대나 소파에 누워 지냈다. 하루 한 끼는 꼭 밀가루를 먹던 내가 칼국수 사리면을 넣은 국물에서 밀가루 냄새가 역해 입에 대질 못했다. 밥은 괜찮을까 하여 밥솥에 밥을 안치는데 증기배출이 시작된 순간 온 집안에 퍼지는 밥 냄새에 황급히 안방으로 도망쳐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입에 달고 살던 커피는 온통 쓴 맛 밖에 느껴지질 않았다.


IMG_9887.jpeg 내 몸에 달이 자리잡았다


내 몸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었다. 초음파에서 엄지 하나 크기만 한 검은 동그라미, 실제 크기는 1cm도 채 되지 않을 세포인 네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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