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와 <규림문방구>
‘메모’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당일 입고된 따끈따끈한 신간을 샀다. ‘문구인’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마스크를 끼고 손세정제를 열심히 바르며 전시를 관람했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 위협 속에 나만의 봄이 되어준 책과 전시,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를 읽고 <규림문방구>전시를 다녀왔다.
메모와 문구, 제가 할 말이 참 많은데 말이지요...
메모는 습관이다
6공 다이어리가 예뻐 보여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동화책 주인공이 수첩을 들고 동네 버스 노선을 메모하고 외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손바닥만 한 스프링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수첩에 '별의 탄생과 죽음'이나 '혈액형별 성격'등을 적거나 명언 따위를 메모하곤 했다. 독서량이 늘면서 책에서 읽은 문장을 베껴 썼다. 반복이 습관이 되었다.
4년 간의 수험 생활을 접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몰스킨 노트와 라미 만년필을 샀다. 습관대로 초고는 무조건 손으로 썼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면 읽은 책의 문장을 따라 쓰거나 그날의 감정을 기록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한 해설을 쓰기도 했다. 텅 빈 노트는 광활하고 막막해 코스 안내도 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가 된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몇 키로를 달려왔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기록해야 했다. 습관처럼 글을 썼고 직업이 되었다.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결국은 힘이 된다.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아무튼, 메모] 57쪽
여행을 떠나고 임신을 하고 출산한 뒤에도 메모는 계속되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에 휩쓸리는 순간을 기록했다. 임신으로 속속들이 변화하는 몸의 감각과 생각과 감정을 놓칠세라 바삐 메모했다. 출산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썼다. 조리원에서도 노트와 펜을 내 몸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다.
내 선택에 의심이 들고 내 자신이 흔들릴 때 메모했다.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곳에 왜 왔을까? 임신이 잘한 일일까? 내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가? 손을 움직이면 영영 답답하게 나를 짓누르던 세계의 압력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희망이 보이고, 오늘 쓴 한 줄이 내일의 두 줄을 예고했다. 그렇게 나의 세계가 바뀌었다.
문구가 작품을 만든다
작년부터 [로그아웃 좀 하겠습니다] [도쿄규림일기]로 김규림 작가를 알게 되면서 노트 커버의 세계에 입문했다. 노트 속지를 바꿔 끼우며 쓸 수 있어 주제별로 노트를 구분해 쓸 수 있고, 얇은 노트를 빠르게 채울 수 있어 성취감이 상당했다.
미니 사이즈의 프라이탁 노트 커버는 여행 등 이동 중에 휴대하기 편해 짧은 메모를 남기기 좋았다. 소설과 에세이 등 긴 글을 쓰기 위해 몰스킨 까이에 사이즈가 호환되는 헤비츠 가죽 노트 커버를 작년 생일 선물로 샀다. 필명을 각인해 주문 제작한 제품을 받아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커버에 노트를 여러 권 끼워 임신 및 육아 에세이를 쓰고 브런치 북으로 완성한 연작소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초고를 완성했고 첫 장편 소설을 쓰는 중이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메모할 수 있다. 내 취향의 노트와 내 손에 딱 맞는 펜이 갖춰져 있다면 메모의 양과 질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여행을 떠나 바다를 바라보며 백사장에 걸터앉아 휴대용 노트에 메모를 한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에 갑자기 떠오른 소설 속 장면을 묘사한다. 아이가 잠시 잠이 든 사이 옆에서 엎드린 자세로 노트에 오늘 아이의 옹알이를 기록한다. 다들 잠든 늦은 밤 책상에 앉아 오늘 메모한 것들을 정리해 한 편의 글로 발전시킨다. 외출할 때마다 가방에 챙겨 넣는 두 개의 노트 커버가 든든하다. 이것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메모하기를 부추기는 문구가 작품을 만든다. 문구가 좋아 자연스럽게 일기를 쓰고 그리며 기록하게 되었다는 <규림문방구>의 이야기에 행복했다. 작가님의 메모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었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 [아무튼 메모] 67쪽
쓰는 대로 살 수 있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날부터 썼던 노트를 다시 들춰보았다. 쓰고 싶다, 써야 한다, 나는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등의 문장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쓰고 또 쓰면서 어느새 내 책이 나왔고 꾸준히 내 글을 연재하고 있다. 메모가 사람을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 하라는 대로 따라 사는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메모해야 한다. 메모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내 취향의 노트와 펜부터 골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