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1
프루스트는 왜 이름도 프루스트일까. 프루스트를 읽는다고 말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마치 예상보다 일찍 눈을 떠 산책하러 가는 길 마주한 이른 아침 공기 같은 이름. 알렝 드 보통의 책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같은 제목도 우리에게 어떤 그리움을 이끌어낸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작년 태교를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 책은 이미 많이 읽고 있으니 좀 더 특별한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민음사 패밀리세일에서 쓸어온 8권, 시리즈상 4권까지 번역된 프루스트가 책장에 꽂혀 있었고 피터캣이라는 북카페에서 프루스트 읽기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처럼 부드러운 오후의 햇빛이 가득한 카페, 그녀는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나는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1권 180쪽)의 문장을 읽으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엄마는 너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단다'...같은 장면은 없었다. 독서 모임은 저녁 7시에 열렸고 나는 전형적인 임산부 클리셰라면 치를 떨었으니까(엄마는 배를 쓰다듬으며 영화 <에일리언>을 보았단다!).
7권까지 읽고 일주일 뒤 아이가 나왔고 시간이 흘러 프루스트 읽기 모임은 일요일 오후 한 시로 자리를 옮겼다. 일요일 한 시...부담없이 주인공이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의식의 흐름을 펼쳐놓는데만 100페이지가 넘어가는 고구마 가득한 소설을 읽기 좋은 시간.....1권부터 포기자 속출하는 고전소설을 두 번째 읽기 좋은 일요일.....자줏빛 속표지의 1권을 챙겨 카페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 아이는 태어났고 이제 나는 나를 위해 프루스트를 읽는다.
우리는 왜 프루스트를 읽을까. 주인공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잠자리 키스를 받기 위해 괴로워하고 나름의 계락을 쓰고 실패하고 뜻밖에 성공하고 간신히 잠자리에 드는 과정까지가 한 시간 동안 읽은 내용이라면, 끝없이 이어지는 콩브레 종탑 묘사에 잠깐 정신이 나갔다 돌아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이건 독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해 주는 소설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두어 시간 읽는 동안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가 손자까지 낳을 전개 속에서 우리의 마르셀은 이제야 홍차에 마들렌을 담그고 있다. 그래, 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가자! 놀란 주인공은 4페이지에 걸쳐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주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과거의 기억 속 콩브레로 훌쩍 떠나버린다. 주인공이 시간을 되찾기까지, 소설의 마지막 권 '되찾은 시간'까지 민음사 번역 기준 14권의 책이 독자를 수줍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1, 86쪽, 민음사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프루스트 읽기 모임을 기다리며 나는 기뻤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보였고 그 속에서 나 역시 조금 더 나은 세계로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강렬한 기쁨과도 같은 홍차 한 모금처럼 프루스트 한 모금이 시간을 빛나게 만들었다. 내가 잊고 있던 세상의 아름다움, 해질녘의 밤하늘을 조용히 유영하는 구름의 모양, 비에 젖은 나무의 냄새, 내 몸속에서 박동하는 심장의 움직임 같은 것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비루한 세상 속에서 유한한 생명을 가진 나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다. 나는 지금 프루스트를 읽고 있으니까.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믿기 힘든 뉴스가 연이어진 한 달이었다. 코로나 유행으로 엉망진창인 올해 전체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신의 실패한 장난 같은 나날들 속에서 지치고 무뎌진 신경을 프루스트가 예리하게 다듬어준다. 세상은 잔인하지만 아름다움을 잊어선 안 된다고,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긴 소설을 읽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글을 쓰며 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프루스트를 읽으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