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해보니...
요리를 한다는 것은 뭔가 폼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셰프들이 불과 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며 한 때 요리사의 꿈을 꾼 적도 있다. 하지만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백수가 되고 때마침 아내는 프리랜서 일이 생겼다. 아내는 "일을 하면서 요리까지 하려니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설거지를 할테니, 나보고 요리를 맡으라고 했다. 그렇게 자취 이후 거의 안 했던 요리를 다시 해 보니...
처음엔 재미있었다. 기분전환이랄까, 레시피는 참고만 할 뿐 대충 대충 내맘대로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아내가 손질한 재료도 있었기에 칼질만 몇 번 해서 대충 넣고 볶거나 끓이면 됐다. 문제는 재료가 다 떨어지자 시작됐다. 내일부터 뭘 먹어야지?
첫째로 식단을 짜고 레시피를 찾아야 했다. 둘째로 식단에 맞는 재료를 구매해야 했다. 셋째로 재료를 손질해야 했다. 요리는 그 다음 일이었다. 요리를 하는 건 잠깐 재밌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은 재미가 없다. 보조 요리사가 있어서 재료를 딱 준비해 주면, 난 셰프처럼 우아하게 요리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들기 전에 내일 식단을 걱정하게 되니, 정말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중년 주부들 사이에서 삼식이가 제일 무섭다는 말을 우스개소리로 알았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점심 먹으며 저녁 뭐 먹을지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내는 점심 먹고 있는데, 왜 저녁 얘길 하냐며 짜증을 냈다. 그 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짜증낼 일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영양사처럼 식단표를 나에게 미리 보여주었다. 반대로 최근에 아내가 점심을 먹으며 저녁 메뉴를 물었다. 점심 준비하고 이제 막 앉아서 한 술 뜨려는 찰나에 물으니, 또 저녁할 생각에 밥 맛이 떨어졌다. '그래, 아내도 밥 맛이 떨어졌겠구나!!!'
장을 보면서 점점 재료 손질하기 어려운 재료는 피하게 되고, 손질된 재료를 찾게 된다. 요리하기 전에 마트에서 아내와 같이 장을 보면서 달래간장 해달라고 '달래'를 장바구니에 담으려고 했더니, "그냥 간장에 김 찍어 먹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직접 달래를 다듬어 보니, "그냥 안 먹고 말지"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콩나물도 다듬어 보니 손도 시렵고 대가리 껍질 까는 게 참 귀찮았다. 아내가 끓여 준 콩나물국에 껍질 있다고 지적했던 날들을 반성했다. 심지어 깐마늘은 누군가 한번 처리를 했기 때문에 찜찜하다고 아내에게 깐마늘을 사지 말 것을 권했던 기억도 났다. "그래, 난 쓰레기였다!"
"그래 해보니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방금 전에 점심 먹은 것 같은데, 어느새 저녁이다. 또 저녁 먹을 시간이다. 밥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참 빨리도 돌아온다. 아내는 "언제 저녁 먹을 거냐며?" 묻는다. 내 흉내를 내며 정시 식사 타령을 한다. '그럼 밥은 정시에 먹어줘야지. 배고픈 건 참기 힘들지. 배고프면 화가 나지' 여기가 구내식당도 아닌데 내가 와 그랬을까? 자업자득이다. 말과 행동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그동안 잘 받아 먹었으니 군말없이 해야지. 슬슬 저녁 준비하러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바지락 미소된장국과 시금치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