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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Jun 14. 2021

식단 노트

밥하기 싫은 날

요리를 만만하게 봤다. 간단한 밑반찬 하나 만드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계속 서 있다 보니 몸은 뻣뻣해지고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밥 언제 먹어? 얼마나 걸려? 내일 뭐 먹어?"와 같은 아내의 사소한 말에도 점점 짜증이 났다. 점심 먹고 돌아서면 또 저녁 준비할 생각에 우울해지면서 머리가 아프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백수에게도 주말은 있고, 주말에 늦잠을 자고 싶기 마련이다. 늦잠 자고 싶은 날에도 아내는 아침 차려 달라고 나를 깨운다. "어제 끓여 놓은 된장국 데워서 대충 먹자"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단백질이 없다며, 계란 후라이를 해달라고 계속 나를 깨운다. "오빠 회사 다닐 때, 잠 와 죽겄는데 일어나서 다 해줬다"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비몽사몽으로 아침 겸 점심을 차리는 데, 아내는 수저도 챙기지 않고, 물도 챙기지 않고, 다 차려 놓은 밥상에 딱 자리 잡고 먹기 시작한다. 얄미웠지만,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나도 예전에 다 했던 짓이니까. 그런데 아내가 "계란 후라이가 이게 아닌데.."라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한다. 또 "오빠 왜 빨리 안 와? 같이 먹자"며 나를 부른다. 난 밥이랑 국이랑 떠서 밥상에 갖다 놓고, 영양이 좀 부족한 거 같아서 '새송이버섯 버터구이'를 빨리 해서 밥상에 가려고 하는데, 재촉하니 열이 확 받아 버렸다. "밥 차리는 거 하나도 안 도와주면서 뭘 빨리 오라고 하냐"라고 확 쏘아붙였다. 아내도 "잘라 놓은 김치가 없어서 김치냉장고에서 포기김치 꺼내서 먹기 좋게 다 잘랐다"라고 응수했다. 그렇게 주고받고 이제 앉아서 밥을 먹는데 계속 "계란 후라이가 맘에 안 든다"라고 먹을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아놔! 그럼 니가 계란 후라이를 해서 먹던가" 나도 기분 나빠서 화를 냈다. '아침에 잠자고 싶은데 억지로 일어나서 해줬더니 돌아오는 건 지적질이라니' 짜증이 나고, 아내가 미웠다.


살다 보면, 밥하기 싫은 날도 있다. 특히 주말에 밥하는 게 더 힘들다. 기분 탓일까. 마치 회사에서 주말 근무하면 피로도가 2배로 쌓이는 것과 비슷하다. 직장인이 일하기 싫은 날이 있듯이 아내도 밥하기 싫은 날이 있을 텐데, 요리하기 전에는 몰랐다. 아내가 주말에 외식하자고 할 때도 속으론 집밥 먹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내 생일상 차려줄 때, "다리가 통나무가 됐다"라고 말했는데 어떤 느낌인지 감이 안 왔다. 하지만 이젠 처절히 뼈 속까지 느끼고 있다. 난 집밥 차리기 3주 만에 두 손 들고나가떨어졌다. 아내는 어떻게 3년 넘게 이 짓을 했을까? 아내는 "밥 하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고 했다. 힘들어도 참고 밥을 차렸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식탁 의자에 엎드려 잠깐 잔 적도 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적질이라면 내가 아내보다 더 했을 텐데, 음식에 있어서 아내보다 더 유난 떨었을 텐데... 아내도 내가 많이 미웠겠구나! 아내는 "힘들었지만 내 덕분에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보물이라며, 그동안 쓴 식단 노트를 내게 주며 말했다. "이젠 오빠 차례야, 내가 혹독하게 프로 요리사로 만들어 줄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지만, 아내는 진지했다. "오빠가 식단표 써보라고 했지? 오빠도 한번 써봐" 힘들어서 요리에서 손 뗄 생각이었는데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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