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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Jun 17. 2021

새벽 한 시에

글쓰기 좋은 시간

<새벽 한 시에> 보들레르의 '시'처럼,

 

아, 드디어! 나 홀로! 이따금 때늦게 돌아가는 지쳐 빠진 합승 마차의 굴러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휴식은 못될 망정 고요만이라도 우리는 갖게 되리라. 아, 드디어! 인간의 얼굴이 주는 압도감도 다 사라져 버리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는 이제 나밖에 없다.
아, 드디어! 이제 나는 어둠의 목욕 속에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자물쇠를 이중으로 잠그자. 이렇게 열쇠를 잠가 놓으면, 내 고독은 한결 우심해지고 현재 나와 세상 사이를 떼어 놓고 있는 장벽은 더욱 굳건해질 것 같다.

무서운 삶이여! 무서운 도시여!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자.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아침 8시 58분 사무실 도착,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다. 메일 체크를 하고, 월말 매출 정리를 했다. 다행히 이번 달은 적자를 면했다.


외근을 나갔다. 여러 업체를 방문했다. 온라인 업체, 사장은 코감기가 걸렸는지 코를 연신 훌쩍인다. 대화는 끊기고 쉽지 않은 비즈니스가 예상된다.

다음으로  사수의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방문했다. 바늘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다. 업체 사장이 “바늘을 독점으로 달라”고 한다. 사수는 “독점으로 전부 줄게”라고 말하고 나서는, 농담으로 “하는 거 봐서 여기저기 줄 수도…”라고 말을 흐린다. 업체 사장이 드라마 배우처럼 바로 맞받아 친다. “드러운 놈”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다음으로 조 부장을 만났다. 최근에 보내준 스티커는 잘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박스의 엉뚱한 곳에 붙여 놓았다. 아무렴 어떠냐! 붙어 있으면 그만이지.


우린 오늘 외근 일정의 종착지인 파라다이스로 향했다. 파라다이스… '60대의 홍대'라 불리는 그곳… 발을 들여놓으니 왠지 늙어진 기분이 들었다. 파라다이스 근처의 설계업체를 방문하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오늘은 빅 바이어, 빅 대리점과 한 잔 하는 날이다. 내공이 장난이 아닌 곳이라서 잔뜩 긴장했다. 소화도 안 될 지경이었다. 빅 바이어는 영업을 마감하고 차분히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옷닭도리탕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빅 대리점 아저씨들은 군대 이야기, 옛날이야기를 쉬지 않고 내뱉으며 갈증이 나는지 소주를 물처럼 들이킨다.

난 정신력으로 버틴다. 쓰러지기 직전에 다행히 1차 방어전이 끝났다. 몸은 이미 알코올에 만신창이가 돼 비틀거린다. 2차로 당구장으로 들어간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무리에서 낙오되었고, 아저씨들은 소주 한 잔 더 한다고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


어이쿠! 이만하면 다 끝났을까?


불금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난 드디어 홀로 되었다.


나는 이 밤의 고요와 외로움 속에서
나 스스로를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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