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남겨진 아름다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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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 낮잠이 필요 없는 시간, 책을 읽어 내려갑니다.


직장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점심시간, 대부분은 낮잠을 청합니다. 짧은 20분이지만 그 효과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업무를 견딜 에너지를 잠시 충전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금요일의 힘일 수도 있고 혹은 반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이럴 때면 낮잠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날에는 자리에 책을 한 권 가져옵니다.


'코스모스(Cosmos)'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코스모스_칼 세이건, 가방에 넣고 다니기 너무 힘들어서 사무실에 두고 읽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짧은 분량으로 읽는 그런 재미가 있습니다.


낮잠이 오지 않는 점심에 읽고 있는 책입니다. 우주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산 이유도 있지만, '인류'에 대해서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구입을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배운다는 표현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책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인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요.


꽤 두꺼운 책이지만, 그만큼 꽤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오전 내내 분주하기만 했던 사무실이 조금은 차분해지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책을 읽어갈 때면 조용히 창 밖을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깁니다.


"수많은 그리고 빽빽한 빌딩 속, 나의 시간은 아름답게 남겨지고 있을까?"




출장을 갈 때면, 점심을 이용해 이렇게 산책을 합니다. 테헤란로의 빌딩 숲이 아닌 정말 자연을 품은 숲이 있기를 바라면서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꽤 괜찮은 기대감을 어딘가에 품고.


조금 이상하게 들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아름답다니,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남겨진다니."


이상한 말과 이상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상한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가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간은 아름답게 남겨지고 있다는 점, 하나입니다. 아니면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 일지도 모르겠지만요.


■ 이윽고, 남겨진 아름다움에 대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흘러가는 구름,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고요한 정적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이 들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원칙에는 어려 개가 있습니다.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Time)' 입니다. 우주의 팽창과 함께 뻗어 나간 시간은 어떠한 변칙에도 흔들리지 않고 작용을 합니다. 그런 점은 꽤 정직한 것도 같습니다.


태어남(Birth)과 동시에 그 시간은 시작되고 죽음(Death)과 함께 그 시간은 종료가 된다는 아주 멋진 원칙은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1988년을 시작으로 저의 시간도 열심히 흐르고 있습니다. 아마 한참 흐르고 있는 중이겠죠? 그게 24시간이라면, 몇 시 몇 분을 지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온전하게 흘러가고 있는가?" 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그리고 흘러간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주 거대한 우주의 한 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 걸까?", "보다 좋은 번식을 위해 유전자를 남기는 것 뿐일까?" 와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원칙인 시간과 함께 남겨진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그 정답은 뒤로 남겨두고 일단은 앞으로 걸어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알맞은 속도와 적당한 발걸음 그리고 꽤 괜찮은 기분과 함께.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에 아름다움이 남겨진다."

"오늘, 나의 시간에는 무엇이 남겨졌을까?"




지나간 시간에 무엇이 꼭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그런 날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남겨질지도 모를 그 아름다움을 위해 오늘은 무탈하게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윽고 남겨진 아름다움은 그냥 '남겨진 아름다움' 과는 다릅니다.


'이윽고' 라는 부사가 붙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를 의미하는 이윽고라는 부사처럼.


우리의 시간에도 그리고 그 지나가는 시간 안에는


얼마쯤,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름다움'이 남겨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편을 마지막으로 '평균율의 삶'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조금은 긴 호흡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수필에 나름의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점에 묘한 기대감도 함께 찾아옵니다.


아무쪼록,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이윽고 그 아름다움이 남겨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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