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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쌓여간 점과 선과 면이, 입체를 만든다.
어쩌면, '아재스러움'이나 '진지함'과 같은 저의 한 단면은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자연스럽게 쌓여온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는 이러한 축적의 과정을 통해 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상상하기에는 조금 벅찬 감이 있지만, 아저씨가 되어가는 저 또한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대상이니 환영을 해주고 싶기는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대로 바뀌어 가는 저의 모습이 좋다면,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니까요.
그거면, 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의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도, 또한 아무렇게나 쌓여나가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점, 선, 면 그리고 입체가 가지는 차원의 방향처럼 '무언가를 구성하며' 쌓여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순간(혹은 구현이 되는)에는 '그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인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카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 고 생각한 그 마음이 '무언가'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독서실에서 읽은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서가 축적의 한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마음은 어느 정도의 윤곽을 지니며 자연스럽게 '표출'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상의 경험이 모여서 축적이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름의 방향을 가지며 형성된 우리의 한 단면은 "꽤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은 아닐까?" 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탄생한 단면이, 대화의 장르를 결정한다.
비슷한 경험과 과정을 통해, 유사한 단면을 형성한 사람끼리는 아무래도 대화가 잘 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어려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저만의 장르(Genre)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고, 상대방은 상대방만의 장르를 가지고 그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장르를 받아들일 것이냐? 혹은 말 것이냐? 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결정'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잠깐만 들어보라고 또는 엄청 재미있을 거라고 말을 해도, 저와 비슷한 단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의 포물선은 원만한 궤도를 그리며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나와 딱 맞는 장르를 가진 사람 하고만 대화를 해야지!" 라고 하는 것도 아무대로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관계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장르에 부흥하기 위해 나의 장르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라고 하는 것도 여간 내키지가 않습니다. 개인만의 시간과 그 축적을 통해 형성된 입체적인 단면은 꽤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또는 본인만의 영역을 지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유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라는 질문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만의 입체를 담은 장르를 열심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르 자체에 대해서는 우위도 없을 뿐더러 또 누군가는 좋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고민하기에는 너무나도 그 변수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구축해 나간 장르를 좋아해 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 거창한 접근에 저 또한 의문이 들지만, 그런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표출된, '아재스러움' 혹은 '진지함'은 저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영역에서는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인만의 확고한 입체를 가지며 그 영역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과의 공감을 희망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저의 목적에서도 그렇고 또 평균율의 삶을 바라보는 저의 일상에서도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깊게 그리고 넓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요란한 사진에 글을 읽는 내내 눈이 아프시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같은 파란색 안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또 색깔이라는 단어 안에도 엄청난 스펙트럼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입체 혹은 그 단면에도 우위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함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그리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