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면, 그리고 대화의 장르.

06-1

by 고봉수

■ 아마도, 사원 4년 차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회사의 직원과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이렇게 시간을 내어 마시는 커피는 그 자체로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시간을 내어 만든 휴식이니까요.


그러다 갑자기,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하나인 '인스타그램(Instagram)'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Y : "봉수씨, 인스타 한다면서요?"


B : "아 네, 소소하게 올리고 있습니다. 근데 왜요?"


Y : "저기 XXX팀의 OOO씨가 봤다고 하더라고요."


B : "아 OOO씨 알아요, 인스타 하시나 보네요?"


Y : "네, 근데 봉수씨 과장님이냐고 물어보던데?"


B : "에? 과장님이요? 아 저 사원이잖아요."


Y : "아니, 얼마나 아재스럽게 올리면 그랬겠어요!"


B : "하하... 아직 29살 밖에 안됐는데."


이런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나름의 충격을 받았던 대화여서 그런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느꼈기 때문에, 한가로운 티타임(Tea time) 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그동안 써 온 '인스타' 속의 글들을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대화에서 뭔가,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찝찝함 혹은 불편함은 확실하게 아니었지만 그런 어색함을 느낀 이유를 찾기 위한 '하나의 확인'으로써 글들을 읽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아재로 만든 걸까? 나는 아재인가?"


(※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를 가지며 사용하고자 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저 그 날의 대화를 기억하는 소재로써, 그뿐입니다.)


글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솔직하게 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왜 그러시지? 그냥 소소하게 적은 것 같은데?" 라는 반문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아, 단어가 좀 잘못됐나? 요즘 인기 있는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나름 해석하면서 이리저리 읽어봐도 도무지 '그 이유'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그냥 글인데 대체 어디서 아재스러움이 묻어난다는 거지?"

8년 차가 된 지금, 생각을 해보면 OOO씨의 말이 이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막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차이가 느껴지거든요. 참 신기하게도요.

계속 읽어봐도 나오지 않는 그럴듯한 '해답'에, '아재스러움'이라는 의문을 끝까지 남기며 핸드폰을 껐습니다. 그리고는 이 날의 대화도 일상의 바쁨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알 수가 없었던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근처에서 술을 마시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였습니다.


"야야,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글쎄, 그 연예인이 말이야..."


"아니, 그 이야기 들었어? A 팀장님!"


"알지? 알지? 이건 대박이야, 진짜 완전."


다같이 술을 마실 때면, 빠지지 않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그 날의 자리는 한참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녁의 술과 이런 소문들은 꽤 잘 어울리니까요. (물론 근거 없는 일방적인 디스_Disrespect는 반대하지만요.)

술자리에는 술자리와 어울리는 대화 혹은 그 소재가 있는 것 같아요. 술의 힘인지, 분위기의 힘인지 아니면 말을 하는 사람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분명히 있습니다. 알맞는 주제가.


그러다가 문득 창 밖으로 밝게 빛나는 '달'을 발견했습니다.


선명하게, 눈이 시릴 정도로 날카롭게 빛나는 달의 차가움에 잠깐 그 시선을 뺏겼습니다. 꽤나 한참을 보고있었던 것 같습니다. 달을 한참보고 있자면 경외감(敬畏感) 들거든요.


그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꼭 있죠? 술자리에 분위기를 못 맞추는 그런 사람들이요. 그게 접니다. 자조적인 인정에 조금은 멋쩍기도 하네요.)


C: "봉수야, 뭘 그렇게 보냐?"


B : "아니, 달이 너무 빛나는 것 같아서."


Q : "그게 뭐가 신기하다고, 달은 빛나는 거지."


B : "달이 스스로 타는 행성이 아닌데, 태양에서 오는 빛을 반사한다는데, 유독 오늘 이렇게 빛이 나는 게 신기하지 않아? 대기가 맑은 건가 아니면 그만큼 태양의 빛이 세진 건지 암튼 뭔가 이유가 있겠지?"


C, Q : "... 전문가 납셨네."


개인적으로 달을 포함한 우주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 전의 글에서도 우주사랑에 대해서 열심히 적어두었습니다.) 가끔은 망원경을 들고 나가서 천체관측을 할 정도입니다.


그럴 때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넘어 우주의 '고요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설명은 어렵지만, 아무튼 우주는 그 자체로 참 좋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대화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F가 말을 해줬습니다.


F : "봉수씨는 좀 너무 진지한 것 같아."


C : "맞아, 맞아 진지충이야. 완전!"


Q, F : "맞아, 맞아 맨날 진지하려고 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자면, 모두 좋은 친구들이고 아직도 만나고 있습니다. 가끔은 저와 같이 이렇게 '진지함'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대화의 '다채로움'을 위한 목적으로요.)




■ 달과 6펜스와 같이, 달은 그 상징성을 갖는다.

유머와는 거리가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하다'는 수식어가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듭니다. 아무쪼록 그렇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대화에서 제가 했다면 좋았을 대답은 달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아니라,


"아니, 그냥 술 더 마시고 싶어서 그렇지!"


였을까요? 아니면,


"아니, 잠깐 허세 좀 부려봤어!"


라고 했으면 그 분위기를 타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뭐가 적절한 대답이었고, 뭐가 그럴듯한 대답이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저는 아마 똑같은 대답을 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달을 보고 있었던 목적도 그리고 왜 그렇게 보고 있었는지 저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달 그 자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니까요.


뜬금맞은 이상한 문장에 조금은 그 설명을 더하면,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상황에서 유인원(Ape)은 손가락을 보지만 인간(Human)은 달을 그 자체를 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손가락'은 현실을 의미하고 '달'은 상상을 의미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인원에게는 식욕과 같은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손가락'에 그 의미가 있다면,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탐험하고 싶은 인간에게는 상상의 대상인 '달'에 그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이런 연구가 있었다는 어느 매거진을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자리의 분위기를 위해서 혹은 그 분위기를 잘 타고 넘어가기 위한 요량으로 '손가락'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보다는 제가 바라보았던, 그 목적을 가졌던 '달'에 대해 또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단호박 10개는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실 수도 있겠지만, 아무쪼록 괜찮으시다면 이런 이해와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저로서, 제가 가진 관성에 따라 변하지 않을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기도 때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정답은 없는 것 같지만, 제가 가진 관성은 중력이라는 우주의 법칙처럼 꽤 그럴듯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점에서, 의문이었던 '아재스러움' '진지충'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에 적절한 해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뉘앙스를 같이한다는 느낌만큼은 맞을 것 같습니다.


뭔가, 요즘의 트렌드(Trend)인 가볍고, 짧고, 강력하고, 위트 있고, 마음속 어딘가에 남지 않고, 쉽게 날아가버리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 모습은 여전히, 한결 같지만요.


"그 사람, 과장님이야?"


라는 질문 속에 담긴 '과장님'이 의미하는 바가 "재미없는 사람일지", "진지한 사람일지" 혹은 "그저 그 자체로 올드(Old)한 사람일지", 명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질문을 한 OOO씨만이 알겠죠?




'2단지'라는 가수의 '모래알'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모래알 같은 믿음에 무게가 있었던가요." 라는 가사가 와 닿습니다. 적당한 무게가 그 안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면이 된다."


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차원이 없는 점, 1차원의 선 그리고 2차원의 면에게는 그 방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역방향으로도 흘러갈 때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방향을 가지며 흘러왔을 겁니다.


33살의 인생 속에서 다양한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들은 저의 한 단면을 이루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면들은 이제 한 부분의 3차원으로써 입체적으로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게 싫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3차원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점도 좋고, 선도 좋고, 면도 좋고 그리고 입체도 좋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아재스러운 저의 진지함도 여전히 좋습니다.


-이어서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이번에는 1부와 2부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시도에 나름 그 즐거움을 느낍니다.


어딘가에 확실하게 남겨진 소재를 나름의 방식으로 다듬고 정리할 시간이 생겨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재미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글을 줄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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