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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느닷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만의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
문득 갑자기 찾아온 생각에,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지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어디로’라는 그 목적에 대해서는 더욱더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아무래도 어설프다는 느낌이 마음속 어딘가 강하게 밀려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은 그 실감만큼은 아직도 명확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 '실감'은 어딘가 또 다른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시간의 공백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 한번 찾아올 거라는 것도 알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술이라는 행위는 이렇게 시작되지 않을까?" 하고 가벼운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거창한 표현으로 ‘예술’이라고 적었지만, 저에게 있어 예술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실감을 전달하는 과정’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런 표현이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그 과정에는 미술가, 음악가 혹은 작가의 실제적인 감정이 오롯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감을 전달하는 그 과정은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만 느끼는 것이고, 결과물로써의 작품을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영역이니 의미가 없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조금은 인정을 하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예술가의 철저한 주관이 반영된 결과물을 우리가 보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결과물에 대한 해석에도 다양한 오해가 존재할 수 있음 또한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전달의 과정은 분명히 결과물보다 우선하여 존재를 해야 합니다.
물론 개개인의 해석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기 때문에 하나로 일원화된 이해를 바란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런 실감이 이 안에 가득하게 투영이 되었구나” 라는 마음, 딱 그만큼을 바라게 됩니다.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음이 당연한 것인데 이런 이해를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너무 직접적으로 말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실감을 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무엇’과 ‘어떻게’는 예술가가 가진 특유의 능력 혹은 그 방법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각자의 방식이기 때문에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는 글로써, 미술가는 그림으로써, 음악가는 작곡으로써 아마 그 실감을 전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로’라는 물음에는 “왜 전달을 하려고 하는가?” 와 같은 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명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예술(藝術)의 시작과 그 마음에 대해서
저는 이것을 ‘세상으로의 연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술을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목적성을 나름의 생각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실감을 전달하고 싶은 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면요.
한 가지 더 나아가야 할 점은 세상으로의 연결에게는 그 '방향성'이 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에 예술가가 만든 무언가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 모두가 환영을 하며 이를 받아들이면 어느 때보다 좋겠지만 이는 흔하지 않은 경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보다는 세상이 변하며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그에 맞는 적절한 수단을 통해 실감을 전달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순서만 달랐지 그게 그거 아닌가요?” 라고 보신다면 그 안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은 친환경을 요구하고 있는데 엄청난 성능을 가진 내연기관 엔진을 내놓는다면? 이라는 차이입니다.
새롭게 개발된 엔진 또한 기술의 발전이라는 가치를 가지지만, 애석하게도 이제 세상은 친환경을 주요한 가치로써 인정하는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향성을 염두에 두면서 예술은 탄생을 해야 합니다.
보편적인 관성을 가진 세상에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의 연결’이 가능하도록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혹은 본인만의 희열을 위해 만들어지는 작품도 있다는 점은 (오히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런 작품에는 어쩌면 ‘세상으로의 연결’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의 창의성을 다채롭게 구현하는 수단이니까요. 이것 또한 예술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 라고 갑작스레 떠올린 그 첫 마음에는 아무래도 “공감을 받고 싶다” 라는 목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그 안에 ‘세상으로의 연결’을 수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노동'이라는 범주와 그 결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실감을 전달하는 그 과정이 온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시대적 이데올로기, 변화 그리고 가치관에 대해서 한 명의 관찰자로서 예술가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그 의견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수단은 참으로 자유롭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해석은 개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해석을 예술가가 의도한 대로 올바르게 이끄는 것 또한 예술가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글이 주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사람 혹은 사물의 온도가 담겨있고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듯이,
이 결과물은 예술가의 의도를 오롯이 투영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어디까지나 그 과정에 예술가의 끝없는 ‘찰나의 고민’을 그리고 ‘그 순간’을 온전하게 담아내야 하니까요.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림과 음악 등 다른 분야의 고민은 얼마나 큰지 (혹은 깊은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글을 적는다는 것’에도 나름의 고민이 담겨있다는 사실은 체감을 합니다.
수많은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토대로 문단을 그리고 글을 만드는 그 과정에는 작가가 바라보는 찰나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노동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쉽게 말하면 ‘교환’을 의미합니다.
예술가가 ‘어느 날 느낀 실감을 적절한 수단으로 끄집어내어 전달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물’이 예술가가 준비한 교환의 대상이라면 ‘그 대상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에 대한 것’은 연결이라는 세상이 준비한 교환의 대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교환은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갑자기 낭만이라뇨?”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같은 상태에 있지 않은 두 가지의 대상이 이렇게 교환을 통해 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정말 좋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예술의 모습이지만 적어도 그 의미를 가진 다는 점에서는 아무래도 예술은 참 아름답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미완의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 목수가 흘리는 땀방울의 진정성 또한 너무나 아름다운 것처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술의 시작과 그 마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제가 고민하는 점들을 끝없이 나열하다 보니 글이 너무나 길어진 것 같아서 "어떻게 잘 와 닿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다가 지루해하실까 봐, 중간중간 귀여운 작품들을 넣어두었는데, 부디 제 의도가 알맞게 잘 작용했기를 내심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