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오늘(今)을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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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 최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퇴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근속 35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염 예방을 위한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이번 주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집에서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괜찮은 근무 조건인 것 같습니다.


우선, 아침 7호선의 만원 전철을 벗어날 수도 있고 또 8시 출근시간에 대해서는 최대 7시 59분까지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삶의 질(Quality)'이 조금은 올라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단지 '출근시간'이 사라진 것뿐인데 이렇게나 마음이 가벼워지다니,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직장인의 근무 형태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렇게 월요일의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챙기고 업무를 시작합니다. 중간에 정우(너무나 사랑하는 조카입니다.)가 놀러 오고, 그렇게 일을 좀 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옵니다.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행복한 17시의 퇴근을 맞이합니다.


집에서만 이루어지는 모든 이동은 참으로 조촐하기만 합니다. 회의를 가거나, 점심에 커피를 한 잔 하러 가는 모든 이동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다 보니 그 시간은 더욱더 더디게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화요일을 시작합니다. 다름없는 재택근무의 한 형태를 유지하며.



정우는 잠을 너무 잘 잡니다. '쌔근쌔근'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아마 오후에 놀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익숙하기만 한 ‘공간’과 ‘시간’에 오늘은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마의 하루는 이렇구나,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퇴직을 하면서 달라진 엄마의 일상이 어떨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루를 같이하며 바라보니 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슬프기도 했고 조금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조금은 눈이 부시기도 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잠깐 카페에 책을 읽으러 나간다고 하면서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왜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연민(憐憫)의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이겠죠.


■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며.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었습니다. 4월, 유채꽃이 만발하며 아름다웠던 여행에는 그 날의 색감이 가득하게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필름으로 사진에 담을 때면.


글을 쓰면서, 잠깐이지만 너무나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가 생각났습니다. '눈이 부시게' 라는 드라마로 특히 그 엔딩이 기억이 납니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적어보았습니다.)


눈이 부시게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정말, 슬픈 대사지만 이를 연기한 '김혜자' 선생님의 모습은 차분하기만 합니다. 아니면 의연하다고 할까요? 뭔가 그런 '모순적인 모습'에 모든 단어, 문장들이 마음속에 더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하루를 같이하며 바라본 엄마의 뒷모습은 아마 이런 감정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부셔야 할 엄마의 일상들이 혹시나 그렇지 않을까 봐, 혹여나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 것 같습니다.


엄마의 하루가, 정우와의 생활로 어딘가에 묶여 자유롭지 못할까 봐.


그리고


‘재택근무’처럼 집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현실에, 그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을까 봐 그래서 걱정이 된 것 같습니다.

엄마를 보면, 꽃을 참 좋아합니다. 꽃 안에 들어가 찍은 사진이 대부분일 정도이니까요. 그래도 그런 사진을 자주 찍어주고 싶어요. 화사한 엄마의 모습이 잘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에게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해오셨거든요. 저녁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또 출근을 하는 아빠의 모습은 불만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어릴 때의 저에게 있어서는요.)


하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해한다'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깨의 무게'를 알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정우를 찾는 모습에도,

그러면서도 정우의 사진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아빠를 보면, 허세가 있습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술에 취해 돌아온 아빠의 모습에는 쓸쓸함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걱정이 됩니다. 정말.


어느 날,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정우가 제일 좋다. 정우만 보면 힘이 난다."


이렇듯 정우를 바라보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누나와 저는'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고 '정우는' 새롭게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부모라는 감정'을 다시 느끼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감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현재의 저로서는 알 수는 없지만, 아빠의 술주정에 그리고 엄마의 핸드폰에 가득하게 담겨있는 정우의 모습을 보면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우는 그 자체로 너무나 고마울 뿐입니다.

누나와 제가 태어나면서 그렸던 아빠와 엄마의 그림에 우리는 얼마나 부합하며 자랐을지 의문입니다. 혹시 그 프레임을 한참 벗어나지는 않았을지 아니면 어딘가 다른 색을 가지고 있을지.


내일이 되면, 마지막 재택근무가 끝이 나는 순간에 엄마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정우랑 하루를 보내는 거 좋아?"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정말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나름 괜찮아" 라는 대답이 그 안에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근을 하며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도 조심스럽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 정우가 얼마나 좋아?"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지만, 정말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너희보다 훨씬" 이라는 대답이 그 안에 있었으면 합니다.


정말로 누나와 저보다, 정우가 아빠에게 더 힘을 주는 존재이기를 바라거든요.


정말입니다.


정우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그만큼 너무나 보기 좋거든요.


나중에 정우가 어른이 되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려고 가득하게 사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정우, 네가 조금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우리 아빠와 엄마의 이런 애정을.




올해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족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그때는 아마 정우도 같이 가겠죠? 그리고 저는 또 사진을 찍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3명이 함께 있을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명확해지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눈이 부신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바쁘게만 살아가는 나의 시각에서는 더딘 엄마의 시간과 갇혀있는 듯한 엄마의 공간이 한없이 슬퍼 보이겠지만, 부디 착각하지 말기를."


연민이 아니라고 했지만 정작 연민을 품은 것은 저였던 것 같습니다.


‘부모라는 감정’으로 혹은 ‘정우의 행복한 오늘’을 위해 열심히 그 시간을 할애한 아빠와 엄마의 하루는 무엇보다 눈이 부셨던 날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균으로, 적당함으로"라는 단어를 써가며 나름 보편적인 시선을 가졌다며 괜찮게 생각해왔지만,


오늘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다시 한번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성적으로 변해, 글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쳐지지는 않았을지 고민도 됐습니다. 그랬다면 본질을 잃은 듯한 마음에 이렇게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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