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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의 시간은, 그렇듯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월급과 시간을 트레이드-오프(Trade-Off) 하는 직장인에게도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조금은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아 전전긍긍할 때도 있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확실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름휴가' 입니다.
요즘은 자율근무의 트렌드에 따라 굳이 여름에 휴가를 계획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에게는 '여름'하면 '휴가'가 상징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만큼 여름이 오는 계절의 변화엔 휴가라는 설렘도 함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봄 조차도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늘 그렇듯이 저도 여름휴가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면 좋을지 혹은 어떤 여행을 할지, 항공권 검색을 해보기도 전에 이미 그 기대감은 어딘가에 선명히 차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행복한 고민'은 일정 단계에 이르면 '현실적인 고민'으로 그 모습을 달리합니다. 이때에는 무엇보다도 올해의 여름휴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선택은 저 또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관광지를 갈 것이냐? 아니면 휴양지를 갈 것이냐?" 의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진 매력(여행으로써의)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관광지는 흔히 유명한 명소(Spot)에 방문해서 사진을 남기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특색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면, 휴양지는 시간적 여유를 통해 쉼(Break)을 우선적으로 취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아주 간단한 예시로 서울시는 관광지, 제주도는 휴양지와 그 결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여행지도 꽤나 많을 것입니다. 도시의 특색도 경험하고 또 쉼은 쉼대로 채울 수 있는 그런 곳은 제 상상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행의 콘셉트(Concept)를 결정하는 것에는 '49%와 51%' 차이처럼 어느 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그 우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차이가 1%로 아주 미묘할지라도요.
그러나 가끔은 이런 친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난 뭐든 다 괜찮아, 여행이 거기서 거기지. 일단 떠나고 보자"
정확히 중간에 있는 것 같은 모호한 대답과 정말 어디를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쿨한 성격에 마음대로 해도 되나, 잠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도 막상 여행을 준비할 때면 나름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화로 꽤나 디테일한 질문을 하거든요.
"수영할 거야? 어디 많이 돌아다닐 거야?"
저 또한 배낭을 준비할 때면, 미묘한 차이 속에서 콘셉트를 명확히 하게 됩니다.
관광지를 가게 되면 가볍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와 때로는 사진을 남겨야 할 수 있으니 조금은 준비한듯한 옷 등을 챙기고, 휴양지에는 로퍼나 샌들 그리고 태양을 적절히 가릴 수 있는 스트라이프 셔츠를 챙기게 됩니다.
나름의 준비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미묘한 차이는 이렇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줍니다. 적어도 여행을 위한 물건을 챙기는 그 손길에는 확실히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 꽤, 괜찮은 여행을 위한 선택
하지만 지금은 ‘그런 준비’를 먼저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관광지'나 '휴양지'에 상관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택을 먼저 합니다.
그 선택을 결정하고 나면 솔직히 어디를 가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신기하게 고민의 90%가 해결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선택에는 각자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책을 고릅니다. 짧은 기간동안 읽을 수 있도록 조금은 얇으면 좋고, 전문지식을 서술하는 책이 아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고릅니다.
경험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단편집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때로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을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그 선택이 끝나면, 적절한 장소를 찾습니다. "어디 한적하고 조용한 카페가 없을까?"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되어도, 항상 이렇게 정중히 요청을 합니다.
"하루 정도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자. 그리고 저녁에는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싫어하면 어쩌지? 등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 오히려 반기는 친구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각자의 휴식을 위해 여행을 선택했으니 이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마련한 시간에는 여지없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여행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낯선 공간에 그리고 낯선 시간에 찾아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그 순간은 꽤나 낭만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만,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익숙하게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
평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외부적으로는 '새로움'을 느끼고 내부적으로는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래서 그 시간을 온전하게 '실감'하는 것.
그 점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난해한 표현에 "이게 뭔 소리야?" 라고 하실 것 같아 걱정도 앞서지만, 이러한 설렘이 있음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관광지를 가야 좋다 혹은 휴양지에서 쉬는 게 최고다!"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온전함을 위한 스스로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괜찮은 여행'을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는 '책과 카페'가 있듯이 그 방법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A와 B 사이에서 적당함을 찾아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 어디를 가든 혹은 어떤 여행을 하든 온전한 시간을 보낼 스스로의 평균이 그 안에 선택되어 있다면 그 여행에는 꽤 괜찮은 구석이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꽤, 괜찮은 여행을 위한 선택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지금이 지나가고 휴가를 기대할 수 있는 어느 순간이 찾아오면, 즐겁고 행복한 고민도 같이 찾아오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