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면, 그리고 대화의 장르.

06-2

by 고봉수

■ 그렇게 쌓여간 점과 선과 면이, 입체를 만든다.


어쩌면, '아재스러움'이나 '진지함'과 같은 저의 한 단면은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자연스럽게 쌓여온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는 이러한 축적의 과정을 통해 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상상하기에는 조금 벅찬 감이 있지만, 아저씨가 되어가는 저 또한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대상이니 환영을 해주고 싶기는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대로 바뀌어 가는 저의 모습이 좋다면,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니까요.


그거면, 만족을 합니다.

물론, 아직은 젊은 고대리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도 찍으며 소소한 것에도 실감을 느낄 줄 아는 그런 '날 것의 마음'이 남아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의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도, 또한 아무렇게나 쌓여나가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점, 선, 면 그리고 입체가 가지는 차원의 방향처럼 '무언가를 구성하며' 쌓여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몰랐겠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순간(혹은 구현이 되는)에는 '그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인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카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 고 생각한 그 마음이 '무언가'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독서실에서 읽은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서가 축적의 한 과정이라면,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마음은 어느 정도의 윤곽을 지니며 자연스럽게 '표출' 되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단편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제목도 어느 정도 정해두었는데, 아직은 막연하기만 합니다. 소설이라니.

그런 점에서 일상의 경험이 모여서 축적이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름의 방향을 가지며 형성된 우리의 한 단면은 "꽤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은 아닐까?" 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탄생한 단면이, 대화의 장르를 결정한다.


비슷한 경험과 과정을 통해, 유사한 단면을 형성한 사람끼리는 아무래도 대화가 잘 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어려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저만의 장르(Genre)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고, 상대방은 상대방만의 장르를 가지고 그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장르를 받아들일 것이냐? 혹은 말 것이냐? 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결정'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잠깐만 들어보라고 또는 엄청 재미있을 거라고 말을 해도, 저와 비슷한 단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의 포물선은 원만한 궤도를 그리며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화도 궤적을 그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 방향의 직선도 그리고 완벽한 곡선도 아닌 적당한 움직임을 가지며 나아가는 포물선과 같은 그런 대화들은 아무래도 즐겁습니다.


그렇다고,


"나와 딱 맞는 장르를 가진 사람 하고만 대화를 해야지!" 라고 하는 것도 아무대로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관계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장르에 부흥하기 위해 나의 장르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라고 하는 것도 여간 내키지가 않습니다. 개인만의 시간과 그 축적을 통해 형성된 입체적인 단면은 꽤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또는 본인만의 영역을 지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유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라는 질문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만의 입체를 담은 장르를 열심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르 자체에 대해서는 우위도 없을 뿐더러 또 누군가는 좋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고민하기에는 너무나도 그 변수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구축해 나간 장르를 좋아해 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인생의 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온 거창한 접근에 저 또한 의문이 들지만, 그런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날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찾는 과정은 꽤 큰 노력과 애정이 함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장르를 온전하게 전달했을 때, 이 모든 것을 좋아해 줄 그런 상대방을 찾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표출된, '아재스러움' 혹은 '진지함'은 저의 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영역에서는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인만의 확고한 입체를 가지며 그 영역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과의 공감을 희망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저의 목적에서도 그렇고 또 평균율의 삶을 바라보는 저의 일상에서도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깊게 그리고 넓게.

점과 선 그리고 면을 통해 입체를 만들어나가 듯, 대화의 장르에서도 그 깊이와 넓은 시각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원만한 포물선을 가진 그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요란한 사진에 글을 읽는 내내 눈이 아프시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같은 파란색 안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또 색깔이라는 단어 안에도 엄청난 스펙트럼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입체 혹은 그 단면에도 우위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함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그리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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