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Marsala 18-1438
그렇게 선배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아침부터 너무나 궁금했던 ‘마르살라(Marsala)’를 검색했다.
구글의 이미지를 통해 눈으로 직접 색채를 확인하면서 어딘가에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꽉 막혀있던 기억이 하나하나 살아났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보았던 색(Color)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마르살라는 이런 느낌이었지”
붉은 계통의 컬러이지만 그 색채가 가지는 질감을 바라보면 조금은 무겁고 두꺼운 깊이를 가진 색이었다.
하나의 포인트로써 그 의미와 존재감을 드러내는 액세서리(Accessory)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스커트 혹은 셔츠의 색감으로 어울리는 그런 컬러였다.
물론, 머플러(Muffler)나 스웨이드(Suede) 재질의 로퍼(Loafer)를 통해 컬러를 배치하여 안정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느낌으로는 넓은 면에 사용되어 안정감을 주는 색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르살라’가 올해의 컬러로 선정이 되었다니,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나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심사위원들이 왜 이 컬러를 올해의 상징으로 선정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얼마나 다양한 소재의 제품들이 마르살라의 컬러로 등장을 하게 될까? 그런 기대감일 것이다.
누가 보면, 별것도 아닌 일(또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일)에 세심한 관심을 갖는다고 이상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그 '시작점'이 어딘가 한 부분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생일 때, 직장에 다니던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같은 대학교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지금 이렇게 기억을 해보면, 당시 만났던 여자 친구는 평범한 스타일이었다.
어딘가 엄청나게 뛰어난 부분도 그리고 엄청나게 이상한 부분도 없을 만큼 표준과 같았다고 생각이 든다. '뛰어나고, 이상한'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다양하겠지만.
물론 여자 친구 스스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어도 나의 시선에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 유별난 것이 있다면, 속옷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세심한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세심한 신경을 나에게도 자주 공유를 했었다. 특히, 어딘가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행을 갈 때면 같이 속옷을 사러 가자고 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속옷을 사려고 같이 가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이 든 것도 아니어서 따라간 적도 많았다.
“이 색은 좀 어때? 잘 어울려?”
“음, 아니면 이런 재질은 좀 괜찮을까? 너무 클래식하게 보이지는 않아?”
“저번에 그 색이랑 완전 다르지?”
"이 버클은 열기 쉽지가 않겠는데? 불편할까?"
뭐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 질문을 하려고 나를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가끔은 나의 대답을 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질문으로만 끝나고 그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편이었다. 만약 정말 나의 대답을 매번 원했다면 나 스스로도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색이 그녀와 잘 어울리는 그리고 어떤 재질의 속옷이 그녀에게 적절히 스며들 수 있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부분으로써 속옷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렇게 함께 '새로운 속옷'을 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어떤 기준을 가지며 그리고 어떤 의문을 해결하며 결정된 속옷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에게는 무엇보다 적당한 의미를 가진 속옷이었을 것이다.
“냉장고에 크로켓이랑 샐러드가 좀 있는데 먹을래?”
그녀와는 가끔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곤 했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하고 대부분은 간단하게 조리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맥주도 같이 마시면 너무 좋겠는데, 사놓은 거 있어?”
“응, 아마 저번에 사둔 게 좀 남아있을 거야.”
간단하게 차린 저녁을 먹은 뒤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집에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