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Marsala 18-1438
“어김없이 올해도 발표가 되었네요. 아마 패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올해의 컬러는 마르살라(Marsala) 입니다!”
‘마르살라’, 언젠가 붉은 계통의 이미지를 찾으면서 본 적이 분명히 있었는데 라디오를 통해 이렇게 듣게 되니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어떤 색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인지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저 “그런 계통의 색을 찾아봤었다” 라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한 번 궁금함을 느낀 이상 해결이 될 때까지 못 참는 성격이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동안 어느덧 사무실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조금이라도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노트북을 열자마자 무조건 검색을 해보겠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미스터 그레이(MR. Grey), 좋은 아침이야.”
선배님은 항상 나를 ‘미스터 그레이’로 불렀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나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뭔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또 잘해주시기도 했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이름으로써.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수많은 색채 중에서 하필 “왜 회색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 네,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꽤 큰 클라이언트를 만났다고 들었어요.”
“정말이지, 미팅을 하는 내내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결과는 좋아서 진짜 다행이야.”
“결과가 좋았다니 다행이에요. 저희 부서에서 작년에 미팅을 갔을 때는 결과가 너무 안 좋아서 거의 포기 상태였거든요.”
“맞아. 그렇지 않아도, 그쪽 컨설팅에서 '미스터 그레이' 칭찬을 많이 하던데? 꽤 열심히 했다면서?”
“오 그래요? 근데 결과는 왜… 그랬는지. 네, 맞아요. 그때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결과가 실패여서 아쉬웠지만요.”
“그래도 기억을 하고 계시더라고, 탁월한 '색 감별사' 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꽤나 고마워하더라고.”
“색 감별사라니, 좀 촌스러운데요?”
“그렇지? 나도 얼마나 웃겼다고, 그래도 딱딱한 미팅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데 그건 도움이 좀 됐어.”
“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꽤나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기분은 좋네요. 그래도 ‘색 감별사’라고 부르지는 마시고요. 선배님, 알았죠?”
“그래 알았어, 아무튼 오늘도 굿모닝이야.”
“네, 오늘 하루도 수고하시고요.”
색 감별사, 단어는 촌스럽지만 내 직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적당하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심 놀라울 만큼 그럴듯한 단어들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어떠한 '사물'에게 어울리는 '색채'를 찾아내는 것에 있다. 그게 회사가 될 수도 있고 기업의 로고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광고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생동감이 없는 무언가에 나름의 분위기를 심어준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는 꽤나 만족을 하며 일을 하고 있다.
뭔가 오랜 시간 단련을 한 장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정신, 소명의식 등과 같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 의미를 조금은 실감하며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