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0 Marsala 18-1438
차에서 내려 운전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대저택의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 잘 정돈된 정원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지만 운전기사의 발걸음은 꽤나 빨랐다.
마치 ‘이제부터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조금의 여유도 느끼지 못한 채, 대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 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말을 남기며 운전기사는 복도로 사라졌다.
운전기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을 위해 마련한 응접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상당히 클래식(Classic)하게 디자인된 건축물의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의 인테리어는 다소 현대적인(Modern) 분위기를 가졌다. 클래식과 모던의 명확한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대저택의 외부와 내부에서는 그 차이가 조금은 분명해 보였다.
뭔가 나무 느낌의 소재 그리고 시간의 흘렀음이 느껴지는 그런 질감을 가진 소품들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장소인데,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물(혹은 그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사물이 원초적으로 가진 목적과 그 용도 외에 '불필요한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긴장감을 풀며 감상에 빠져있던 순간, 운전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치, 이제는 준비가 다 된 것과 같은 표정 그리고 그 손동작으로 나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복도를 통해 안 쪽에 위치한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운전기사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시죠' 와 같은 느낌의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하고 마음을 먹으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했던 (그렇게 예상을 했던) 본부장은 자리에 없고 그 그룹의 회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 업계의 일을 하면서 뉴스 기사와 다양한 매체의 이미지 또는 동영상으로만 보았던 사람이 이렇게 눈 앞에 있다니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여러 장의 사진으로써 존재했던 사람'이 ‘하나의 현실’로 실제 하고 있다는 그 실감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는 길이 불편하지는 않았나? 갑작스러운 일에 기분이 나빴다면 용서하게.” 라고 회장은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나에게 명확히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을 통해서 울리는 것과 같았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분이 나쁜 것도 그렇게 크게는 아닙니다.”
“그랬다면 다행이군,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설명을 해주었다면 자네가 좀 더 수긍하기 편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여기에도 있음을 이해해주게.”
“솔직히 무슨 사유인지가 가장 궁금하지만 지금은 왜 컨설팅 부서의 본부장이 아닌 회장님이 여기에 계시는지? 그게 더 궁금하기는 합니다.”
“음, 설명하자면 아마도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 꽤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군. 뭐 좀 마시겠나?”
“저는 괜찮습니다. 대신 집중하면서 천천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를요.”
“작년에 내 개인적인 지시로 프로젝트를 시킨 것이 있었네, 물론 공식적으로는 컨설팅 부서에서 의뢰를 한 것으로 보였겠지만. 아마 자네도 기억을 할 거야. 그때 그 일을 자네의 팀에서 했었으니까.” 라고 말하며 그는 아주 사소한 부분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와 '오늘'이 이렇게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 새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소한 시작점은 그에게 있어 확실한 사실로써 존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