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Marsala 18-1438
걱정을 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깊고 편안한 잠을 자고 일어났다. ‘푹잤다’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깊은 잠을 오랜만에 잤던 것 같다.
차가워진 아침 공기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했다. 아무래도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시리얼(Cereal)과 케일 주스(Kale Juice) 정도로 아침을 대신했다.
막연한 느낌이겠지만, 그런 정도의 간편한 준비가 필요할 것만 같은 아침이었다.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는 적당하게 8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 약속 시간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해서 창 밖을 바라보니 ‘짙은 네이비 컬러의 세단(Sedan)’이 바로 아래서 정차를 하고 있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세단의 모습에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의 색과는 너무나 멀게만 보이는 컬러의 그 광택이 이상하게 보여서였을까? 현실과는 다른 세상의 차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너무나 '반듯하게' 정리된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라는 그런 실감이 마음속 어딘가에 강하게 찾아왔다.
나를 데리러 온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차 안에서 약속의 시간인 오전 9시가 되기만을 그리고 그때 딱 맞춰서 문을 열고 나오겠다는 그런 의지를 가진 운전기사가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로 세단의 상태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1분 1초를 다루는 '정확성'을 몸 안에 가득하게 넣어놨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운전기사와 그 세단일지도 모른다.
약속 시간인 9시 정각에 맞춰서 1층으로 내려가니 상상 속의 운전기사는 이미 마중을 나와있었다.
‘안녕하세요’ 라던지 ‘반갑습니다’ 와 같은 인사는 없었지만 고개 숙여 상대방을 인지했음을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뒷자리를 안내하는 그의 행동 속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누군가의 운전을 안정적으로 수행했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목적지를 향해 차분하게 나아가는 세단 안에서 대화는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의 목적'에 맞게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주면 되는 것이고 나는 '나의 목적'에 맞게 그 목적지에 도착을 해서 본부장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혹은 ‘여기서 얼마나 걸리는지’ 와 같은 목적 없는 질문은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분위기를 가진 세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분위기를 가진 운전기사이기도 했다.
적당한 고요함과 그 차분함을 느끼며 창 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분주한 도심지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나의 공간을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있었다.
‘역시 준비된 세단과 그 운전기사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에 멈춰서는 나보고 내리라고 할 때까지, 하염없이 그 순간을 기다릴 마음이 들었다.
잠깐 졸았나? 시동이 꺼진 세단에서 운전기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언제 일어나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로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바라보니 산으로 둘러싸인 대저택이 눈에 보였다. 이런 곳이 실제로 존재하나? 싶을 정도의 비현실성을 가진 그런 장소에.
그런 곳에 '나'와 '반듯한 세단' 그리고 '정확한 운전기사'는 도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