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살라와 리빙코랄 그리고 그 해 여름.

01-7 Marsala 18-1438

by 고봉수

개인적인 부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당황스러웠다. 기업과 기업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서로가 가진 카드를 트레이드-오프(Trade-off) 하는 과정에 ‘부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인 부탁이라고요?" 확인을 위해 다시 선배에게 물어봤다.


“응, 개인적인 부탁. 근데 문제는 그게 그레이, 너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야.”


‘나에 관한 것, 그게 이 부탁의 핵심이다.’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이 그 부탁에 관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처럼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선배, 제가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처음부터 다시 설명 좀 해줄 수 있어요?”


선배는 그 날의 일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해줬다.


“그레이도 잘 알겠지만, 우리 팀이 이 회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알지? 그래서 우리도 나름 자신이 있었거든, 실제로도 분위기나 그 프로젝트에 대한 상대 부서의 피드백도 나쁘지 않았어.”


“근데, 우리가 발표한 콘텐츠(Contents)에 대해서 그 어떤 답변을 주지는 않더라고. 아직 뭐가 더 필요한가? 싶어서 재차 질의를 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시간은 지연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어갔던 것 같아, 더 이상 발표를 할 것도 없고 상대 부서에서도 추가적인 요청이 없는 그런 상황이.” 라고 말하며 선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좀 다운이 된 것 같아서 잠시 인터미션(Intermission)을 가지기로 했어, 그리고 어디까지나 다들 지쳐있기도 했고.”


“잠시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쪽 부서의 본부장님이 같이 좀 걷자고 하시더라고.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는데 지지부진한 회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기도 해서 같이 내려가게 됐어.”

세상에는 납득할 만한 수준의 이야기와 납득하지 못할 만한 수준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적당한 경계를 이루며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


선배가 말해준 모든 대화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선배의 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의 성사를 결정짓는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그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의 ‘완벽함’이나 ‘적절함’이 아닌 다른 조건에 그 결과는 연결되어있었다.

본부장은 그 ‘연결’에 '나'를 포함시킨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선배는 물론 강력하게 반발을 했다고 했다. 그건 이 프로젝트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혹여 그게 조건이라고 해도 그건 당사자가 가진 자유의지라는 것을.


하지만, 본부장의 의견 또한 너무나도 확고했다. 마치 이번 프로젝트의 회의를 진행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것처럼. 결론을 가진 이야기처럼 명확했다.

‘나와의 만남이 선결되지 않으면, 이번 프로젝트의 성사도 없다’ 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선배도 일단 이유라도 좀 들어보자고 물어봤으나, 본부장은 그 이유는 알려줄 수 없으며, 당사자를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답변을 했다.


“물론, 당사자인 그레이가 없기도 하고 나 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일단 시간을 달라고 했어. 물론 그 자리에서 거절을 하는 것이 너를 난처하지 않게 만드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나도 좀 어렵더라고.”


선배는 상당히 미안해했다. 어디까지나 그 자리에서 끊을 수 있던 고민을 나에게까지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제안에 대한 답변을 나에게 들어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레이랑 친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만 부탁을 하는 거라고 하셨어. 그리고 그 대답을 듣기 위한 시간도 충분히 주겠다고.” 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선배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의 성사와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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