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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May 23.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05 Greenery 15-0343

때로는 '낯설음'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의 일상 속 어느 한 부분도 차지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몇 분을 할애하여. 오늘도 나는 변해간다. 그렇다.


"그게 아니라, 뭐가 어때서라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잖아?"


화가 난 것은 아니지만, 막상 내뱉고 나니 기분 나쁘게 들었을까 봐 살짝 걱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이상한 여자 아니야?'라는 그 생각이 내가 뱉은 문장 어딘가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졌을 거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기에 그 걱정은 잠시 넣어두었다. 그리고 미안함도.


"오늘 하루만 고리타분한 줄 알았더니, 너도 참 고리타분한 애구나?" A는 귀찮다는 듯이 짧게 말을 하고 난 뒤에 잠시 카페 밖을 쳐다보았다.


내리쬐는 여름날의 강한 햇볕이 아스팔트 도로 안으로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고 더 이상 쌓이지 못한 열기가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그렇게 데워진 공기는 빛의 굴절을 만들어 도로 위의 차량들과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형상을 왜곡시켜나갔다.


어떤 자동차는 길이가 짧아졌고, 어떤 자동차는 타이어가 녹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다리가 짧아보였고, 어떤 커플은 서로의 손이 하나로 붙어 녹아있었다.


데워진 공기가 만든 자연스러운 왜곡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겼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한적한 카페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생소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면 '여태까지 한 번도 이렇게 창 밖을 본 적이 없었던가?' 하는 어색함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A의 시선에 따라 나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 정도가 흘렀을까? A가 다시 나를 보며 말을 했다.


"본 적이 없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 알고 있다는 것도 역시나. 그저 앞으로 이제 뭘 할 것인가? 이게 중요한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 고리타분한 하루에 그대로 당해버린다고. 디 엔드(The-end). 그 정도쯤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A는 나를 조금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아무쪼록, 그런 분위기였다.


"아니 잠깐만, 우선 말인데 고리타분하지가 않아. 오늘 하루가." 나는 빠르게 대꾸를 했다. 정말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도 너무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재미있었고 에이드와 함께 적당한 시원함이 느껴지고... 아무튼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휴, 저기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A는 다소 강하게 대답을 했다. 뭔가 짜증이 묻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다른 감정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과 역시나 이해가 되지 않는 A의 대답에 귀찮음이 몰려왔다. 그냥 화를 한 번 내고 보낼까? 아니면 카페 주인한테 말해서 내보내 달라고 할까?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만큼 귀찮았다. 무엇보다 어딘가를 같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이 귀찮음을 확실하게 해결하면 좋을지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A가 내 앞까지 성큼 다가와서 말을 했다.   


"사라진 음표는 찾아야 되지 않겠어, 안 그래?"


'사라진 음표를 찾는다.' 그리고 '그래야 된다.'라고 A는 나에게 말을 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의 모습에서 사라진 음표가 보였던 것일까? 혹은 그 부재가 나의 얼굴 또는 몸의 어느 한 부분을 왜곡시켰던 것일까? A는 어떻게 알았을까?


수많은 생각이 나를 아주 빠르게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데워진 나는 더 이상 그 열기를 담아내지 못했다. 어색함과 낯설음 그리고 짧아져버린 얼굴이 하나의 형상으로 녹아져 버렸다.


더 이상 가득히 참아 낼 수는 없었다.


나는, A를 따라가야만 했다. 적어도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곡된 수많은 것들에 의해 그대로 당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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