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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Mar 19. 2020

브런치 구독자 1,000명이 되기까지 2년 걸렸다.

약 2년 간의 브런치 작가로서의 삶을 돌아보며

뭔가 이상했다. 어제 낮에 접속한 브런치 어플에는 수많은 알림 메시지가 가득했다. 작년 11월 중순에 발행한 브런치 북에 라이킷 수가 급증하고 구독자 수도 덩달아 급상승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조회수가 급상승하는 건 보통 다음 메인에 글이 소개됐을 때인데 조회수와 함께 구독자수까지 같이 상승하는 경우는 다음이 아닌 브런치 메인에 소개될 때였다. 이번엔 글이 아니라 브런치북이 메인에 소개된 모양이었다.  


단 하루 사이에 수십 명의 구독자수와 라이킷 수를 받고, 나는 드디어 도저히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았던 구독자 수 1,000명을 어제 달성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2년 하고도 1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내가 브런치 작가로서 살았던 약 2년의 시간을 돌아보기엔 이보다 더한 적기는 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 써보련다. 브런치 작가로 살았던 지난 내 2년간의 모습을.


들어가기에 앞서 노파심에 밝히지만 이 글은 순전히 1년 뒤의 나를 위해 기록하는 글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랑하려는 글이 아님을 (자랑할 거리가 없기도 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흑역사가 탄생될지도....?) 유념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첫 도전, 그리고 첫 구독자 (2018.02.13 ~ 2018.02.18)


내가 브런치에 처음으로 글을 올린 건 2018년 2월 13일이었다. <32살>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도 32살이라는 나이 앞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쓴 글로 기억한다.


그렇게 어찌어찌 시작된 나의 브런치 작가로서의 삶은 첫 번째 고비를 맞았다. 구독자수가 단 한 명도 늘지 않는 것이다. 구독자가 0명인 상태로 글을 계속 발행한다는 건 엄청난 내적 갈등을 유발했다. 이게 진짜 의미가 있는 일인지, 나 혼자 보는 글이면 굳이 웹에 공개할 필요도 없는 건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려는 스스로와 싸워가면서도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뭐.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꿋꿋이 혼자 보는 글을 올려나갔다.



그렇게 묵묵히 6개의 글을 올렸을 때, 첫 구독자분이 드디어 생겼다..!! 그때의 기쁨이란, 말해 무엇하리. 너무 좋아서 캡처도 하고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인스타그램에도 착실히 기록해뒀다. 그리고 이 게시물은 나로 하여금 <이렇게 답도 없는 일(=글쓰기)>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백수 탐구영역의 시작>, 인터뷰 요청에 출간제의 까지 (2018.02~2018.05.23)


그 이후는 언제 그렇게 안 풀렸나(?) 싶을 정도로 술술 일이 풀렸다. 지금의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백수 탐구영역>이라는 매거진의 연재를 시작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터뷰 요청도 받았고, <백수 탐구영역> 매거진에 글을 10개쯤 올린 시점에서는 한 대형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 까지 받았다.



퇴사 후 원하는 일 찾기_1.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까지

영상은 여기서!--> https://youtu.be/ksozDg8kzoQ

유튜브 채널 <사부작사부작>에서 진행한 인터뷰 영상. 아직도 업로드되어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ㅎㅎ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일이 수월하게 흘러갔다. 아, 이렇게 나도 드디어 스타작가 반열에 오르는 건가..!! 그런 야무진(이라고 쓰고 '근거 없는'이라고 읽는다.) 망상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렸다. 터질 듯이 빵빵하게 채워졌던 헛바람이 한순간에 뻥! 터져버릴 줄도 모르고.



출간 계획 무산, 그리고 긴 방황기 (2018.05.23 ~ 2019.08.22)



네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퇴근길에 편집자 분의 전화가 왔다. 출간 계획이 무산됐다고 했다. 내부 회의를 거쳐 최종 출간 여부를 확정 짓는데 그 내부 회의에서 내 아이템은 통과되지 못했단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편집자분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한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본인의 역량이 부족했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하는 편집자님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괜찮다고. 오히려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애써 밝게 이야기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척'은 어디까지나 '척'일뿐 진짜가 될 순 없었다. 한 번의 출간 무산은 내게 있어서 한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성공의 열매는 그렇게 쓰디쓴 뒷맛을 남기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다. (2019.08.23 ~2019.10)


그랬던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현생이 너무나 안 풀려서>였다. 결혼과 함께 남편과 일본으로 이주한 뒤 한동안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해봤지만 결과는 전부 좋지 않았다. 정규직 일자리가 너무 안 구해져서 알바라도 해보자고 마음먹고 겨우 구했던 알바 자리에서는 이틀 만에 잘리기도 하고, 그나마 정 붙이나 싶었던 유명 커피 체인점에서는 한국인 차별적인 발언도 들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일자리는커녕 알바조차도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반년 이상 이어졌다. 난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낙심해 있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돈 버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번 해보라고.


그렇게 쓰게 된 글이 바로 이거다. <아무 대가 없이도 하고 싶은 일>


<백수 탐구영역>을 쓸 때처럼 미리 콘셉트를 잡고, 내용을 구상하고 쓴 글이 아니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그냥 끄적인 글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신기할 일이다.


<글쓰기>는 성공이 보장된 길이 아니었다. 실제로 한 번 제대로 미끄러지기도 했으니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제목 그대로의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 대가 없이도 하고 싶은 일>. 내게 있어 그런 일은 <글쓰기>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와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에 이어 <30대 작가 지망생의 기록>과 <일본 생활 기록부>, <부엉이 상담소> 매거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과연 써낼 수 있을까?'

써냈다. 9일 만에.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의 탄생


사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내가 과연 써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 글이었다. 10월 말에 잠깐 일 보러 한국에 들어갔다가 오사카로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정혜윤 지음, 시소 출판사>를 읽고 문득 떠올린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는 <백수 탐구영역>을 쓰던 약 1년 전에 이미 구입해서 한 번 읽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갔을 때 들른 친정집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지금 쓰는 글에도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꺼내왔던 책을 오사카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내 안에서 전부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맞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그것도 <내 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모든 사람>이 아닌,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로 당신을 위한 글>을 써야 한 편의 글로만 끝나지 않고 한 권의 책으로까지 엮여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게 그런 글은 이미 한 번 썼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이자 나의 밑바닥까지 들쳐보고 썼던 <백수 탐구영역> 이 생각났다. 이대로 그냥 썩히기엔 아까운 글이었다. 당장 출간해도 될 정도의 글은 물론 아니었지만 단 한 번의 출간 실패로 그냥 포기하기엔 못내 아쉬움이 남는 글이기도 했다.


오사카 집에 돌아온 나는 <백수 탐구영역>을 다시 쓰게 됐고, 그게 바로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됐다.


11월 3일에 귀국해서 11월 4일부터 쓰기 시작한 글을 11월 13일에 마무리했으니 기획부터 구상, 실제 집필까지 총 9일이 걸린 셈이다. 물론 이미 써져있던 글에서 주요 아이디어를 뽑아내 살을 붙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글의 내용이나 흐름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가 참으로 민망하지만....)



하지만 인생이 어찌 그리 쉽게 풀리는 것이던가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 낙선, 그리고... (2019.12.30 ~ 현재)


이러한 연유로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참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었다.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때는 뭐 하나라도 상을 받을 줄 알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히 대상을 받을 줄 알았다. (나의 근자감은 쉽게 고쳐지지 않나 보다..) 브런치팀에서 게재한 브런치 북 공모전에 참여하는 출판사들의 인터뷰 글들을 보면서 어떤 출판사가 나와 결이 맞을지를 혼자 고심했을 정도니 말 다했지.


하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세상엔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았으며 내 작품보다 더 억 소리 나게 참신한 콘셉트는 넘치게 많았다. 나는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보기 좋게 낙선했다.



그런데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갑자기 브런치에서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꾸준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오늘의 브런치 북>으로 선정되어 브런치 메인에 노출된 것은 2019년 12월 30일.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의 낙선을 확인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내게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는 한 편으론 슬프고, 또 한 편으론 기쁜 기억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 날을 기점으로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브런치에 꾸준히 노출됐다. 덕분에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는 어제(2020.03.18) 기준으로 총 1,935명에게 읽혔고, 그중 2.3%가 완독 했다고 한다. 유사한 다른 브런치 북의 평균 완독자 비율이 1.6%라고 하니 그에 비하면 준수한 수준이다. 구독자 수도 가파르게 늘어나더니 결국 어제 드디어 마의 <1,000명>을 넘어섰다..!! 2년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순간이었다.




돈도 안 되는 브런치를 왜 하냐는 사람에게

브런치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요즘은 글보다는 사진이, 사진보다는 영상이 대세인 시대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도 예전엔 궁금한 게 생기면 네이버나 다음 같은 곳에 제일 먼저 검색해봤었는데, 요즘은 유튜브에서 먼저 검색한다. 그 정도로 유튜브라는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퀄리티도 상당히 높아졌음을 자주 체감 중이다.


이런 시대에 왜 돈도 안 되는 브런치를 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모 작가분은 본인이 브런치를 안 하는 이유에 대한 영상을 아예 찍어서 올리시기도 했다. 그 영상에서 해당 작가분은 말한다. <브런치 자체 만으로는 수익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인정한다.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영상을 올리고 조회가 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유튜브에 비해 브런치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가 없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금전적 소득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어렵게 브런치를 시작했더라도 (브런치는 '작가 신청'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본인의 글을 발행할 수가 있다.)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브런치는 돈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당장의 수익만 생각한다면 어쩌면 브런치는 그리 좋은 플랫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가 좋은 플랫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본인만의 사유를 글로 풀어내며 얻게 되는 내적 성장과 그러한 과정 전체를 통해 본인 스스로를 브랜딩화 할 수 있는 플랫폼은 지금 시점에서는 브런치가 유일하다고 본다.


브런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플랫폼이자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까지 알게 해 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브런치는 나의 초석을 다져준 곳에 다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브런치를 꾸준히 할 거다. 나만의 유튜브 채널을 구상 중인 지금 시점에서조차 브런치를 접을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구독자 0명에서 1,000 명이 되기까지 2년 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건 브런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런치와 함께 한 지난 2년은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겪었어야 할 혹독한 훈련의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몸에 익힌 <기록하는 삶>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지난 내 시간에 대해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같다.


나는 앞으로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지금처럼 브런치를 애용하게 될 것 같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 글을 썼다. 혹시나 또다시 <글 쓰는 사람>이길 포기하고 싶어 질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어쩌면 이 장황한 글 한 편을 토대로 새로운 책을 쓸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다. 출간제의는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ㅎㅎ)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글쟁이 다 된 것 같다. 글이 될만한 소재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몸의 안테나를 바짝 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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