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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Aug 27. 2020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

링컨 아저씨, 그 말이 이런 뜻이었나요?

어제 드디어 내 얼굴을 공개했다. 약 2년간 브런치에서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해왔던 내가 얼굴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게 된 것은 첫째, 내 저서가 얼마 전 출간됐고, 둘째, 전염병이 창궐한 이 시국에 오프라인 북토크를 진행하기 어려웠으며 셋째, 얼굴을 드러낸 이후 일어날 일들을 감당해낼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아직 내 얼굴을 드러낸 이후 벌어질 일들이 걱정되고 두렵다.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기보다 그냥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고 마음먹었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내가 그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쓴 것 역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 생각에 자신이 없었고, 

둘째, 내 글에 자신이 없었고, 

셋째,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자신이 없었다. 


한 마디로 ‘자신감’의 문제였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내 생각과 내 글을 믿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언제 어느 때나 나를 염려하고 지지해주는 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믿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공개하게 된 것은 믿어 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선택과 행동을 하더라도 나를 믿고 지지해줄 내 가족과 지인들을 믿기로 했고, 내 생각과 글을 믿기로 했고, 앞으로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갈 나를 믿기로 했다.


얼굴을 공개한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대응해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은 생각보다 내게 별로 관심이 없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그간의 백수생활을 통해 여실히 경험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1시간 30분간 진행된 온라인 북토크는 컷편집과 자막 작업 등을 거쳐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으로 편집됐고 어제 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다. 그리고 나는 부지런히 여기저기에 내 영상을 날랐다.


대학생 때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분들과의 단체톡방에, 7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독서모임의 대화창에, 내 인생의 멘토인 전 직장의 팀장님과 선배님들에게,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된 지인들에게까지. 


얼굴 공개를 하는 것이 두렵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내 얼굴을 여기저기에 뿌려댔다. 다행히도 ‘이렇게라도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내가 걱정한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일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 예상과는 달리 벌어지는 일들에 하나하나 대응해 나간 적이 더 많았다.


아마 이번에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벌어질 크고 작은 ‘이럴 것이다’라는 나만의 상상이 아닌, 그로 인해 돌아올 현실의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피할 수도 없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도 이런 뜻이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코앞이긴 하지만) 내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벌어질 일들에 눈을 돌리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인생을 책임진단 말인가. 세상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관심도 없겠지만 혼자서 이런 다짐들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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