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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17. 2020

프리랜서에게도 워크 앤 라이프의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내 일(work)이 내 삶(life)을 위협해 오다

며칠 전 자기 전에 대뜸 남편이 그런다. 


“자기, 한국 들어가는 건 어때?”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남편은 꽤 진지했다. 여기서 살림하고 집안일 하는데 시간 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내 시간을 올인 해보란다. 오던 잠이 싹 달아났다.


남편이 보기에 나의 하루는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것 같단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다음 글은 뭘 읽어야 하는지, 이번 주까지 읽어야 하는 독서모임용 책의 페이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달린 댓글에 답변은 다 했는지, 간간히 작가분들로부터 오는 이런저런 이메일에 전부 회신은 드렸는지, 다음 책에 실릴 작가 소개란의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이번 주 일요일까지 작성해야 하는 인터뷰 질문은 어디까지 답변했는지, 부엉이 상담소의 영상은 어느 정도까지 편집이 끝났는지, 글 읽는 밤 대본은 썼는지, 썼다면 녹음은 언제 하고 편집은 언제 할지, 새로 기획하고 있는 책의 내용은 뭐고 이와 관련해서 읽어야 할 책은 뭐가 있는지... 등등을 고민하고 확인하고 하나씩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내 하루는 훌쩍 지나갔다.


특히 얼마 전, 유튜브 채널을 하나 더 늘리고 오디오 클립 채널까지 하나 더 개설하면서 내 업무량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긴 했다. 새로 하는 일이 늘어났으니 새로운 업무 루틴이 생기기 전까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겠지. 시간이 지나 일이 손에 익으면 자연스레 사라질 고민이라고도 믿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남편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나 보다. 너무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남편의 그 말을 듣고 요 며칠간의 내 하루를 좀 돌아봤다. 


나는 보통 매일 밤 11시에 잠들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중 대략 8시간을 자고 깨어있는 총 16시간은 이렇게 활용했다. 


집안일(요리/설거지/청소/장보기/빨래 등) 하는데 5시간 30분, 업무(글쓰기/영상작업/녹음 및 편집) 하는데 5시간 30분, 이메일 확인과 회신, 책 읽는 시간 등에 2시간, 브런치(댓글 쓰고 다른 분들 글 읽기)와 인스타 확인 및 피드 올리기 등에 1시간 30분, 운동하고 샤워하는데 1시간 30분.


여기서 가장 줄이고 싶은 시간은 집안일하는데 쓰는 시간이었는데 남편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나 보다. 하지만 집안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맘대로 줄이고 싶다고 줄일 수가 없는 것이 집안일이라는 것을. 


아무리 바빠도 삼시세끼 밥을 안 해 먹을 수는 없고, 냉장고가 텅 비면 누군가는 채우러 장을 보러 가야 한다. 몇 날 며칠 청소와 빨래를 안 하고 살 수도 없다. 결국 집 안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하루에 최소 8시간을 꼬박 일하는 남편에게 시킬 수도 없다. (미안해서) 그렇기에 결국 내가 하게 된다. 


그런 내가 줄인 시간은 딱 2가지였다.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시간과 남편에게 애정을 주는 시간을 줄였다.


인스타그램의 사용 시간을 줄이는 건 일부러 한 일이었다.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했고, 피드를 올릴 땐 아이패드로만 올렸다. 그런데 남편에게 애정을 주는 시간을 줄인 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일이었다. 


내 일에 치여 하루를 허덕이며 살다 보니 내가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남편에게 본의 아니게 신경을 덜 썼다.  내가 글을 쓸 때 그는 잠을 잤고, 내가 영상을 만들고 음성을 편집할 때 그는 내 옆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주식 투자를 했다. 내가 녹음을 할 때 그는 헤드폰을 끼고 넷플릭스를 보며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려 했다. 


그랬던 남편이 이제는 ‘내 일’을 위해 내 인생에서 자기를 빼도 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 


남편이 보기엔 내가 집안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결혼을 했고 남편이라는 한 사람을 더 케어하게 되면서’ 쓰게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 마디로 ‘남편’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나만의 일을 찾아 만들어 나가고 있는 나를 방해하는 ‘방해물’ 같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일을 하느라 잠시 남편에게 신경을 덜 쏟았던 순간에 혼자서 그렇게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니.


‘워크 앤 라이프’의 밸런스를 지키고 싶어 선택한 나의 일들이 ‘라이프’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만의 일을 만들어 나가는 삶도 중요하지만 한 남자의 여자이자 한 집 안의 살림을 책임지는 아내로서의 삶도 내겐 너무나 중요했다.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결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틀 전부터 나만의 ‘퇴근 시간’을 정했다. 내 특기 중 하나인 ‘데드라인’을 설정한 것이다. 


매일 해야 하는 나의 업무들을 줄이기는 어렵다.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그렇다.) 그렇다면 최소한 ‘오늘 할 일은 여기까지만 하자’는 나만의 데드라인이라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속해 있는 직장 없이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나의 일(워크)과 내 삶(라이프)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틀 전부터 밤 9시 이후로는 어떠한 업무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이 그 시간에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나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보기는 했지만 어쨌건 영상 편집이든 음성 편집이든, 브런치나 인스타 댓글이든 뭐든 나의 ‘워크’를 위한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이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나의 애정을 원할 때 언제고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준비상태’로 있었다. 


그렇게 자기가 ‘방해물인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끔 전보다 더 남편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기로 했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내가 방해가 되는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은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두 가지의 존재. 내 일과 내 삶(아내로서의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기혼의 프리랜서인 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이번처럼 하나씩 나만의 숙제를 풀어 나가다 보면 내가 그토록 바라는 ‘워크 앤 라이프의 밸런스’도 맞춰져 있겠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나는 이제 남편에게 물으려 한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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