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려다가도 못 간다

2021년 4월 24일 - 오늘을 남깁니다

by 코붱

나는 총 10층짜리 아파트의 7층에 살고 있다. 목조 건물은 방음이 취약해서 싫고, 단독 주택은 관리가 귀찮아서 싫고, 이 건물은 남편 직장이랑 너무 멀어서 별로이고 등등, 이런저런 조건에 따라 고르다 보니 남은 건물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올해로 지어진 지 36년이나 되었는데 여기서 3년째 살고 있는 입주민으로서 말하자면 연식에 비해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된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아파트는 철골 철근 콘크리트(SRC)라는 구조로 지어졌는데,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SRC가 지진에 가장 잘 버티는 구조라고 한다.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본에서 살기에 ‘지진에 강한 구조’라는 말은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점들만 있는 것 같은 집에도 역시나 흠은 있다. 엄청 시끄럽다. 집 앞에 고속도로 진입로와 4차선 도로가 있는데, 주말만 되면 오토바이가 그 길을 빈번하게 지나다닌다.


부와아앙, 하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도 시끄럽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신호등에 걸린 오토바이의 엔진음이다. 털털털털, 하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온 집안을 시끄럽게 울려댈 때는 내가 이사를 가고 말지, 같은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사할 마음을 접게 되는 건 한국보다 최소 1.5배는 비싼 일본의 이사비용 때문이기도 하고, 얼마 전 알게 된 기분 좋은 사실도 있어서다.


몇 달 전, 슈퍼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이제 막 현관으로 들어서는 한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급히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고, 아주머니는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고맙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싶었는데 맙소사. 나와 함께 일하는 M상이었다.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곧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집 바로 윗집에 그분이 사신다는 거였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윗집에서 크고 작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전보다는 한결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닌, 평소에 늘 함께 일하고 얘기하고 밥까지 먹는(내가 하는 알바는 일이 끝나면 다 같이 점심을 먹는다.) M상이 살고 있는 거니까.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M상을 생각하면 별일 아닌 듯 무심히 넘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또 나는 생각한다. 아, 이놈의 집. 얼른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함께 험담을 할 이웃주민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젯밤 오토바이 소리 너무 시끄럽지 않았냐고, 잘 잤느냐고 물어봐주는 M상의 상냥함에 나는 오늘도 내가 사는 아파트에 대한 속절없는 애정이 생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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