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어려서 그렇습니다 (김영지 저, 디플롯, 2021)
오래 기다린 책이었다. 나는 약 3년 전부터 브런치에서 연재되던 그의 글을 빠짐없이 봤을 정도로 김영지 작가의 열성 팬이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파리에서 약 3년간 유학 생활을 했으며 국내에서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퇴사 후, 현재는 사진작가 겸 프리랜서 디자이너 겸 로스트 앤 파운드라는 소품 가게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에 내가 김영지 작가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의 나이가 올해 고작 만으로 27세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내가 그의 열성팬이 된 결정적인 이유도 아니다.
나는 김영지 작가가
본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매료되었다.
이 책은 김영지 작가가 2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어떻게 삶을 대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내 뜻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해온 한 사람의 기록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김영지 작가를 나와는 다른 딴 나라 별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가 이룬 성과들은 너무 대단해 보였다. 도저히 나는 엄두가 안 나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가 그저 신기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내 생각은 그저 나만의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김영지 작가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불안해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새로 시작하는.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을 때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넘어서기도 하는.
그러다 본인에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구하면 성의껏 응하는, 그런 보통의 좋은 사람.
불안하지만 불안에 지지 않는 삶
프리랜서로서 사는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져 왔다. 그래서 만약 이 책이 그저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이토록 힘듭니다, 라는 메시지만 담았다면 김영지 작가의 오랜 팬으로서 너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프리랜서로서 겪게 되는 불안감을 부정하지 않고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업자처럼 ‘불안’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나아가는 김영지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책 중간중간 김영지 작가의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들어 있는데, 이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퇴사 후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 중인 사람, 프리랜서의 삶이 궁금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번역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첫 발을 내디딘 이때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나는 이제 ‘이렇게만 하면 성공한다.’는 처음 들었을 땐 귀가 솔깃하지만 알고 보면 속은 텅 빈 누군가의 사탕발림 같은 말보다는,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는 나름의 멋과 재미가 있다는 말에 더 믿음이 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