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Aug 20. 2024

[소설] 자식 걱정

엽편소설 - '정' 이야기

자고 일어난 대식은 어느새 자신의 발치에 똬리를 틀고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작게 놀랐다. 어제까지 그렇게 오라고 부르고 또 불러도 침대 밑으로 들어가 꼼짝을 안 하던 녀석이었는데. 언제 온 거지?


고양이는 자기가 편해지면 알아서 친한 척을 할 테니 그냥 내버려두라던 친구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대식은 그때 처음 알았다.


자신이 일어나자 깜짝 놀라며 다시 침대 밑으로 휙 숨어 들어가는 고양이를 따라 대식 역시 반사적으로 침대 밑을 보다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무 큰 관심은 안 주느니만 못하다는 친구 녀석의 말이 또다시 떠올라서였다. 이건 뭐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상전을 모시는 건지.


부엌에 가 물 한잔을 따라 마신 대식은 어느새 깔끔히 비어있는 고양이의 사료 그릇에 한가득 사료를 부어주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TV에서는 한 차례 뉴스가 끝났는지 날씨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곳곳에서는 국지성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폭염도 소나기도 모두 대식에겐 그다지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작년부터 시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의 주차 관리요원으로 근무 중인 자신의 아들이 걱정되서였다.


-오늘도고생이만네우리아들더운데쉬엄쉬엄일해


대식은 얼마 전 주민센터에서 열린 무료 강의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문자를 썼다.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대식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들 녀석의 답은 없을 거라는 것을.


원래부터 그다지 살가운 부자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들과 자신의 사이가 이 정도로 냉랭해진 건 약 1년 전, 예전부터 엉망이었던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살 집을 알아보던 때 벌어졌다.


“아버지. 돈 좀 빌려주세요.”

“무슨 돈?”

“보증금이 부족해서요... 한 5천만 빌려주세요.”


갑자기 5천이라니. 한평생 건설업에 종사하며 일가를 일군 대식이지만 갑자기 그런 큰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식은 일단 알았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아들이 갑자기 집을 구하게 된 것도 자신과 아내가 이혼했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 정도는 부모로서 최소한 해줘야 할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야 이 자식아. 정신 차려! 언제까지 그렇게 싸고 돌 건데? 니 아들 이제 다 컸다?? 번 듯~한 직장도 있겠다, 사지 멀쩡하겠다, 뭐가 문제야?? 자꾸 그렇게 네가 다 도와주고 그러면 아들이 성장을 못해요 성장을~~ 야, 나 봐라. 이 나이 먹도록 취업은커녕 집에서 빌붙어 살면서 나갈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하는 아들이 셋이나 있다 셋이나!! 너 그거 아들 위하는 거 아니야~. 그냥 네 마음 편하려고 그러는 거지! 니 자식도 그래.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재워줬음 된 거 아니냐?? 아주 무슨 지 애비를 호구로 알고!!! 너 그렇게 계~속 오냐오냐~ 하면 안 된다? 어? 야 인마.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하는 거야! 강하게!”


평소 자주 보는 20년 지기 친구의 말은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 잘 키워줬으면 됐지, 친구 말마따나 아들내미 독립하는 것까지 도와주는 건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니라 자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집을 구할 때 돈이 없다면 부모가 아니라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으면 그만인데. 그 간단한 일을 못해서 자신에게 돈을 달라고 징징댄 아들이 대식은 왠지 한심하면서도 괘씸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참에 인생 공부 제대로 시킨다고 생각하고 그냥 거절하자. 그래야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적으로 홀로 서려면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를 알게 되겠지.


집에 돌아온 대식은 아들에게 말했다. 나도 사정이 있어서 당장 그 큰돈은 구하기 어렵다고. 네가 한번 혼자 구해보고 그래도 정 어려우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고.


그 말을 했을 때 봤던 아들의 표정을 대식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엔 크게 놀라는 듯하다가 곧 차분하게 가라앉던 눈과 질끈 깨물던 그 입술을. 알겠다고 짧게 답하며 급하게 등을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던 아들의 뒷모습까지.


그날 이후 아들은 밥 먹을 때를 빼곤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다가 한 달 뒤 대식이 일을 나가 있는 사이에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수철이 어디 갔나?”

“회사 근처로 월세방 구했다고 하더이다. 수철이가 말 안 했어요?”


금시초문이었다. 혼자 알아서 해보라고 말한 건 본인이면서도 막상 하나뿐인 아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훌쩍 집을 구해 나가는 상황이 되자 대식은 영 기분이 찜찜했다. 그때, 자신의 짐을 챙겨 캐리어에 담고 있던 아내가 대식을 못마땅한 듯 흘겨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들 녀석 그렇게 사지로 몰아넣으니까 기분이 좋더이까?”

“그게 무슨 소리야?”

“수철이가 그럽디다. 자기는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고. 자기도 이제 아버지 없다고 생각하고 살려니까 그렇게 알라고.”


대식은 너무 놀랐다. 자신은 그저 하나뿐인 자식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건데.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사회에서 부모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칠푼이가 아니라 혼자서 어떻게든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준 것뿐이었는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미 아들에게 줄 보증금 정도는 다 마련해 둔 대식은 아들의 행동이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연락도, 이렇다 할 왕래도 없이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새 1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다.


이대로 영영 아들 녀석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죽는 건 아닐지 대식은 때때로 걱정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이 답답한 현실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식은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고 카톡을 확인해 봤다. 읽었다는 표시는 되어 있지만 역시나 답이 없다. 이 괘씸한 놈.


그때, 쨍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그걸 보자 대식은 다시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일하는 주차장은 지대가 낮아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늘 침수가 되곤 했다. 그런 날은 침수 복구가 끝나기 전까진 보통 철야를 했기에 아마 이 상태로라면 오늘도 아들은 이 비를 다 맞아가며 밤새도록 일할 것이 분명했다.


비가 좀 잦아들면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발치에 무언가 따뜻하고 물컹한 것이 다가왔다.


“냐옹~”


자식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큰소리 떵떵 치던 친구 녀석이 그렇게 혼자 애태우지 말고 고양이나 키워보라며 억지로 떠맡긴 놈이었다. 벌써 일주일째 한집에 살고 있는데도 이렇게 먼저 다가와 제 몸을 비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식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고양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식이 살짝 몸을 굽혀 고양이에게 손을 뻗자마자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한 발짝 다가가면 두세 발짝 멀어지고 한 두 발짝 멀어지면 알아서 제 곁에 찾아오는 녀석을 보며 대식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래, 지가 마음이 풀리면 알아서 또 오겠지. 고양이든, 아들이든.


대식은 내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안방으로 가 어제 사온 고양이 장난감을 하나 꺼내왔다. 그러자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던 고양이가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나왔다.


긴 끈에 달린 물고기 모형을 잡아보려고 방방 뛰는 새끼 고양이를 귀여운 듯 보고 있는 대식의 뒤로 ‘카톡’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알아서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1년 만에 온 아들의 연락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