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 '정' 이야기
한솔은 아무리 봐도 사라지지 않는 카톡의 ‘숫자 1’ 표시를 하루종일 보고 또 봤다. 이틀 전, 옆집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놀러 왔을 때 한솔은 아이들끼리 잘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어 옆집 여자에게 보냈지만 옆집 여자는 아직까지도 답장은커녕 메시지 확인조차 안 하고 있었다.
처음엔 바빠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옆집은 아이가 태어난 지 이제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심지어 고양이를 두 마리씩이나 키우고 있지만 남편은 일 때문에 지방에 살면서 한 달에 두 번밖에 집에 오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한솔은 점점 연민보다는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카톡 하나 볼 시간이 없나? 밥 먹을 때라든지 자기 전이라든지,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잠깐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면 굳이 나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나...?’
한 달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한솔은 이웃사촌을 사귀고 싶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와 단둘이 있는 게 너무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말이라도 좀 하면 덜 외로울 것 같은데. 아직 ‘엄마’ ‘아빠’ 정도만 겨우 하는 아기가 제대로 된 단어와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은 더 남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한솔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마 이곳이 자신이 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아닌, 친구는 물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국이기 때문에 더 외로운 거라고 한솔은 생각했다.
한솔은 6년 전 남편을 따라 일본에 왔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언젠가 해외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던 한솔은 남편의 해외 취업이 그저 반가웠다.
하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 한 해 두 해, 해외에서 사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한솔은 점점 외로워졌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출이라고 해봤자 오직 집-마트, 집-마트만 반복하는 자신의 생활이 너무도 따분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편처럼 나가서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늘 생각했지만 한솔은 비자 문제로 계속 취업이 안 되는 것을 2-3년 겪으며 점점 취업에 대한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임신까지 하게 된 한솔은 그 이후 취업은 아예 포기했다. 손에 익지 않는 집안일에 더해 출산과 육아라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하다 보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기에.
그렇게 아기가 태어나고 반년 정도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바쁘게 지냈지만,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뒤부터 한솔은 다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솔은 어디라도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한솔이 사는 지역은 일본 내에서도 시골 중에 시골이라 여겨지는 작은 촌동네였다.
버스 정류장이 집 앞에 있기는 하지만 1시간에 1대꼴로 운영해서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는 일상적인 행동조차 차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한솔은 이런 자신의 일상이 너무도 답답했다. 한국에 살았다면 좀 달랐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한솔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한솔에겐 너무나 부담스럽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랬던 한솔이 처음으로 용기 내어 먼저 말을 걸어본 상대가 바로 옆집 여자였다.
일주일 전, 한솔은 현관을 나서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봤다. 복도형 아파트의 끝쪽 방인 한솔의 집은 엘리베이터와 꽤 거리가 있었다. 아쉽지만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 한솔은 깜짝 놀랐다. 좀 전에 봤던 사람이 바로 내려가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잡은 채 한솔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가슴엔 아기띠를 매고 한쪽 손에는 짐보따리를 하나 들고 있던 젊은 여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목례를 해왔다. 한솔은 고민했다. 뭔가 더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볼까? 괜히 말 걸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 어떻게 하지? 내 일본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수없이 드는 걱정들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한솔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던 그 순간 발가락 끝까지 용기를 쥐어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기가 몇 개월인가요?”
“아...! 이제 6개월 되었어요.”
“어머... 저도 애기 엄마예요. 저희 애는 이제 갓 돌이 지났어요.”
“우와 정말요? 그럼 우리 애들은 학교를 같이 들어가겠네요!”
젊은 여자의 아기는 올해 2월에 태어났다고 했다. 빠른 년생이기 때문에 작년 6월에 태어난 한솔의 아기와 같은 해에 학교에 들어갈 거라는 여자의 부연 설명에 한솔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같은 아파트에, 같은 층에 사는, 동년배의 아기를 키우는 아기 엄마. 한솔이 그토록 원했던 가장 이상적인 이웃사촌의 등장에 한솔의 마음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연락처 교환할까요 우리?”
“너무 좋아요!”
안 그래도 하루종일 아기랑 둘이 있으려니까 너무 심심하다고. 이렇게 같은 층에 아는 사람이 생겨서, 심지어 같이 아기를 키우는 사람을 알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마치 한솔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빠르게 쏟아내는 여자의 말을 들으며 한솔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처음 며칠간은 띄엄띄엄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곧 커피라도 한잔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한솔은 옳다구나를 외치며 바로 자신의 집에 여자를 초대했고 둘은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그 뒤로 옆집 여자의 소식이 뚝 끊긴 것이다.
‘혹시 내가 뭐 실수라도 했나? 아니면 우리 애가 너무 혼자서 장난감을 다 가지고 놀아서 좀 별로였나..? 초콜릿이 아니라 케이크 같은 걸 대접했어야 했나....’
한솔은 그날의 모습을 복기할수록 그저 즐겁게만 여겨졌던 그날의 모습이 점차 자신의 무지와 실수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카톡!”
그렇게 홀로 머리를 감싸며 골머리를 앓아하던 바로 그때.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톡의 알람 소리가 들렸다. 한솔은 후다닥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 죄송해요, 한솔 상. 아기가 이틀 내내 열이 나고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동영상 감사해요. 너무 귀엽네요..! 아이 컨디션이 좋아지면 다음번엔 저희 집으로 초대할게요. 지난번엔 너무 감사했어요. 그럼 조만간 또 봬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메시지를 확인할 정신도 없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자신의 상황이 한솔은 너무 우습고 쪽팔렸다. 하지만 어렵게 사귄 이웃사촌을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비하면 쪽팔림은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한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빠르게 답장을 썼다.
- 아, 그러셨군요.. 아기가 아파서 어떻게 해요 ㅜㅜ 저희 집에 한국에서 사 온 아기용 해열제가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가져다 드릴까요?
그 시각. 한솔의 옆집.
“아, 귀찮아 죽겠네. 적당히 좀 알아먹지.”
또다시 온 한솔의 메시지에 옆집 여자는 귀찮은 듯 소파 위로 핸드폰을 툭 집어던졌다. 처음 본 사이에 너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부담스러워서 점차 거리를 두고 싶었는데. 이대로라면 거리를 두긴커녕 오히려 더 친한 척을 해올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사이에 또다시 옆집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한솔에게서였다.
- 괜찮으시면 제가 지금 댁으로 찾아뵐게요!
“이런 게 저는 너무 불편하다고요.....”
선한 의도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더 부담스럽다는 것을 이 여자는 왜 모를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민망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옆집 여자는 또다시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