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와 글 Mar 04. 2016

모자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모자 帽子


크기가 넉넉해서 쓰면 머리가 폭 들어가는, 마냥 유쾌한 모자가 하나-갖고 싶다.


멋 부리기 위한 모자도 아니고
햇빛 가리개나 방한용 같은 기능성 모자도 아닌

오로지 즐거움을 위한-

행복해 지기 위한 모자가 말이다.


우선,

폭 머리를 감싸줄 만한 모양일 것


부드럽고 두툼한 천으로 되어 있을 것.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모자"일 것.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초대받은 티파티에서

모자장수가 쓰고 있었던 것 같은 모자.


다만, 난 부드러운 게 갖고 싶으니까
딱딱해 보이는 그 견직 모자에서 심을 완전히 빼내버린다면 얼추 비슷해질 듯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풀 같은 진한 녹색 벨벳으로 되어 있고,
금세 쏟아질 듯한 꽃이 잔뜩 장식되어 있다.


물론 생화여야 한다.


친구의 사진이라든가,
해변가에서 주운 유리조각이라든가,
건포도 라든가,
말린 무화과 열매라든가,
특별한 날 마신 와인의 코르크라든가.
기념 반지라든가.


맘에 드는 것들이 잔뜩 장식되어 있다.


조그마한_

그리움을 잔뜩 머금은 것들


화려한 모자라기보다 엉뚱한 모자.



그래도 그건 내 머리 모양에 딱 맞아서
폭  감싸주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귀도 완전히 덮어주고
얼굴도 반쯤 감춰 버리고 말지만


그 모자를 쓰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안해질 테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는-


그런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자를 쓰고 외출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 방이 통째로 이동하는 것 같은 것이다.


행복했던 기억이 통째로


세상이 통째로


파리라는 거리를 [이동하는 축제일]*이라고 한 건 헤밍웨이지만
내 모자도 딱 그거랑 비슷한 거다.


개인적인 이동하는 축제일.



어렸을 때는 모자가 싫었다.
귀찮다고 생각했었다.


털실 모자나 밀짚모자는 따끔따끔거렸고
천 모자는 무더웠다.


좀 더 컸을 땐 이번엔 다른 이유로
모자가 싫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은 사람한테만 어울릴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생각하는 거지만,


모자라는 건, 원래부터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고
적어도 도시생활에 있어서

본래 모자라는 것이


개인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쾌락이 너무 좋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처럼,
혹은 무밍에서 나오는 스나프킨 처럼,


철저히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난 모자가 좋다고 생각한다.


기묘해도
술 취한 사람 같아도
상관없다.


난, 나만의 모자를 쓰고
강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소원한다.




*도움말:헤밍웨이가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젊을 때 파리에서 살아볼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아마 에쿠니 가오리는, 그 모자가 모든 행복했던 기억을 통째로 옮겨줄 수 있다는 의미로 이 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어의 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