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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14. 2016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실에 도전하다(1)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러시아 문학자이자  2007년에 동경 외국어대학 학장으로 취임한 카메야마 이쿠오 (亀山郁夫)를 인터뷰한 글로, 세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카메야마 이쿠오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러시아 문학자인 카메야마 이쿠오는 2006년부터 2007년에 걸쳐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네 권과 에필로그인 별권까지, 총 다섯 권을 출판했다. 그리고 같은 해(2007년) 모교인 동경 외국어 대학 학장으로 취임되었다.


"쉰여섯 살까지의 인생과 쉰일곱 살부터의 인생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생각합니다. 너무 큰 변화에 반고리관이 이상해져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내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체성 위기에 빠질 것 같고... 신경이 쇠약해져 있어요."


환경의 격변은 틀림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야마의 표정에는

내면의 혼란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달하고 강인한 인상조차 받았다.


카메야마의 격변을 낳은 두 가지 일에는

두 가지 의문이 얽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10년에 걸쳐 겨우 천만 부를 판다고 하는 소박한 연구자의,

그것도 절대 팔리지 않을 거라고 했던 러시아 문학의 번역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어떻게 백만 부를 넘는 전무후무한 대히트작이 되었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어느 쪽이라고 하면 수더분한 표정을 전신에 풍기고 있어서

뜨겁게 대학 문제를 지적하며 변혁에 불타고 있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카메야마가 어째서 학장 선거에 출마했는가, 이다.


"연구생활을 마무리 짓는다는 기분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번역했어요. 그것을 마쳤을 때 마침 학장 선거가 있었죠. 이런 나를 당시의 부국장에게 추천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럼 한 번 해보죠 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대작의 번역을 마치면 이제 아무것도 없을 테고 연구생활은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장에 취임하자마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폭발적으로 팔리는,

믿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연구자로서의 마무리는커녕 그때부터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의 제1인자로서 여러 미디어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된다.


연구생활을 버리기는커녕, 연구자로서 초다망한 나날의 스타트 라인에 이제 서게 된 것이다.


학장에게는,

출생률 저하와 법인화라는 2중의 짐을 지게 된 대학의 재정상태를 개선하고

교육연구환경을 정비하기 위한 경영 수완이 요구된다.


대학 밖에서의 강연이나 대담, 텔레비전 출연이 늘어나면 비난도 따르는 법.


처음에는 대학 개혁에 따뜻한 축전을 보내왔던 곳에서도 불만이 새어 나왔다.


"이전이라면 비판 같은 걸 받으면 숨어 버리는 나약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비판을 받아도 해야 할 일은 하자라는 기분이에요.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매일 매일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인생이 또 있을까 싶어요. 행정적인 일이나 금전적인 것 등, 사무적인 것에 엄청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매일 매일 결단이 요구되고

매일 매일 결단을 내리고 있는 자기 자신이 있다.


격심한 변화는 그것에 대응하고 있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자신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배경이 바뀌면

그때까지 두드러져 있던 부분이 흐려지거나

숨겨져 있던 부분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나 하는 법이다.


배경이 더블로 변하는, 격렬한 데다가 복잡한 변화를

환갑이라는 나이에 직면했다.


그는 지금 스스로의 질적인 변화를 응시하며

한창 그것을 살아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카메야마가 처음 러시아 문학에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고 한다.


『죄와 벌』은

가난하지만 두뇌가 명석한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비범한 인물은 사회도덕을 벗어날 권리가 있다는 특이한 법해석을 구축,


결국 욕심 사납고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하게 되는데

생각과는 달리 점차 죄의식에 사로잡혀간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누나를 위해서 사둔 문학전집이 있어서,
뭐지 저 빨간 책은?이라는 호기심에 한쪽 구석에 있던 한 권을 집었는데
그게 『죄와 벌』이었어요.

시각적인 체험이 한정되어진 시대의 열네 살이
소설을 통해 살해 장면을 읽는다는 것은
성적인 자극에 가까운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미를 끄는 것입니다.

『죄와 벌』은 그런 의미에서 위험한 소설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작품을 읽고 살인의 쾌락을 맛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살인을 해 버린 인간의,
불가사의한 고독과 공포가 엄습해 오니
그쪽 편이 더 강렬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에 빙의되어 버렸다고 할까,
살인자와 일체화되어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처참한 공포가 자기 일처럼 느껴져서 정말 충격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자신의 경험을 의미 짓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나 자신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열네 살 소년이 우연히 손에 든 소설

이렇게나 동화되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체험을 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역시 예삿일이 아니다.


이상하리만큼 더운 여름, 라스콜리니코프가 살해를 결행한 것처럼

 

소년의 주위에 도대체 어떤 공기가 떠돌고 있었길래

단 한 권의 책에 그렇게도 깊이 꽂혀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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