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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15. 2016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실에 도전하다(2)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러시아 문학자이자  2007년에 동경 외국어대학 학장으로 취임한 카메야마 이쿠오 (亀山郁夫)를 인터뷰한 글로, 세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카메야마 이쿠오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일찍이 카메야마의 가족에 관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카메야마가 이야기하거나 쓰거나 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거나

그것과는 대조적인 어머니에 대한 애정.


"형제들은 다 내가 이상하다고 해요. 넌 아버지한테 그래도 사랑받았지 않았냐고."


카메야마는 넷째 아들*(6형제 중 막내)로 가족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항상


장애가 있는 큰 형에게 차갑게 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아버지가 차가운 만큼 큰 형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던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모로 양분된다.


대저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넓은 주택에서

서로 엇갈리는 가족의 갈등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에 대한 비판은

다행히 밖으로 향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사랑은 넷째 아들에게 충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무의식적인 상태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디에 가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어요. 세계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

지체 없이 그는

"다릅니다. 그건 느끼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싫다는 감정이 반항이라는 형태로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고

그저 싫다고 느끼는, 자신의 감정 자체를 또 다른 자신이 응시했다.


"내 속에 언어화할 수 없는 영혼이라고 할까, 욕망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조용히 그것을 그저 바라보게 됩니다.

내 무의식 중에 잠들어 있는
겹겹이 쌓인 복잡한 층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객관적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의 테마나 사회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하면 말이 안 나옵니다.

가령 말이 세계를 비판하거나, 분석하려고 할 때에 나온다고 한다면
전 항상 비언어적인 체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어를 조절하는 뇌가 수동적인 것입니다. 수동적이니 다른 사람에게 금세 동화되어 버립니다."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주인공에게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는 격렬한 동화의 과정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는 그 후 러시아 문학자가 되기 위해

동경 외국어 대학교의 러시아어학과에 입학


도스토예프스키 연구회를 만들었지만 참가자가 한 사람밖에 없어 좌절했다고 한다.

당시 대학 가는 데모가 빈번했던 시기로 1학년 가을에는 전학교가 휴강을 했고 연이은 학교 측의 폐쇄로 러시아어 공부도 좌절했다.


오로지 첼로를 연주하며 2년을 보냈고

실력이 따라오지 못한 채 3학년이 되었다.


꿈이었던 러시아 문학자가 되기 위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언뜻 친구로부터 여름방학에 『죄와 벌』을 원서로 읽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말에 불이 붙은 건 경쟁심이었다.


그는 바로 그 다음날 서점에 가서 원서를 손에 넣었고

50일간의 여름방학을 오로지 그것에 쏟아부었다.


"에어컨이 없는 우츠노미야의 현립 도서관에 아침 10시에 가서 저녁 5시까지 거의 매일을 다녔어요. 처음에는 한 페이지에 150개 정도 사전을 찾느라고 책이 검은색으로 물들었죠. 그러다가 서서히 하얀 부분이 생겨 났어요. 하루에 한 페이지 반씩 읽는 게 고작이었던 게 점차 10페이지 이상을 읽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는 기억하고 있으니 번역서는 필요 없었어요."


이 무서운 집중력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친구에 대한 경쟁심이었는데


최근에 그 친구는

당시에 원서로 읽지도 않았고,

자기가 했던 말조차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때 그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분명 전혀 다른 인생을 걷게 되었을 거예요."


여름방학 동안의 "열심"이, 위태로웠던 러시아 문학자로의 길을 소생시켰고


대학 졸업 후

카메야마는 연구 테마로

러시아 미래파 연구,

그리고 스탈린 시대의 정치와 예술로 정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전환기라고 한다면 1984년의 8월 14일이었을 겁니다. 이 날이 없었다면 지금 도스토예프스키 연구는 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 때는 서른다섯.

당시 카메야마는 자신이 암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노이로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에 갔습니다. 하루라도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의사가 괜찮다고 해도 착오가 아닌가, 거짓말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어요.

그때는 혀가 아파서 혀암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집이 이사를 했습니다.
그 북새통 때문이었는지 혀에 통증이 사라졌고 덕분에 전 아방가르드*(전위파) 시인의 전기를 쓰기 위한 취재 차 소비에트 연방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연구 대상이었던 시인이 한 동안 머물렀다는 율리아노프스크라는 마을을 방문했고

볼가 강에 놓인 다리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다리 밑에서 총을 든 병사가 두 명 나타나서 카메야마는 구속당하고 만다.


그것이 8월 14일.


카메라를 향한 곳에 소비에트 연방 최대의 전략 기지가 있었던 것이다.

연행되어 간 내무성의 조사로

자신에게 스파이 용의가 씌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비에트 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총살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이대로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극한의 공포에,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의심받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점점 나 자신이 의심쩍어졌죠. 어쩌면 나만 깨닫지 못했을 뿐, 정말 나는 스파이가 아닌가 하고 말이죠.

시인의 연구라고 해도 소비에트 연방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셈이니
그것도 스파이 행위일지도 모른다...... 라든가. 정말 죽지 않으면 이 공포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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